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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4-12-09
0289 「三國志」
從郡至倭
循海岸水行 歷韓國 乍南乍東
到其北岸狗邪韓國
七千餘里

0720 「日本書紀」
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 加羅 七國

1145 「三國史記」
高靈郡 本大加耶國
眞興大王侵滅之 以其地為大加耶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金海小京 古金官國(一云伽落國 一云伽耶)
新羅法興王十九年 率百姓來降 以其地爲金官郡
文武王二十年 爲小京
景徳王攺名金海京 今金州

開國 號曰加耶 後攺爲金官國
南加耶始祖首露

咸安郡
法興王以大兵 滅阿尸良國(一云阿郡加耶) 以其地為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古寧郡 本古寧加耶國
新羅取之 為古冬攬郡(一云古陵縣)
景德王改名 今咸寧郡

1281 「三國遺事」
一爲首露王餘五各爲五伽耶之主
金官不入五數當矣

五伽耶
阿羅(一作耶)伽耶 今咸安
古寧伽耶 今咸寕
大伽耶 今髙霊
星山伽耶 今亰山 一云碧珎
小伽耶 今固城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 구야로 처음 등장한 가야는,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 가라와 남가라 2개로 분화되었고,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에는 아나가야와 고령가야가 추가되어 4개가 되었으며,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성산가야와 소가야까지 추가되어 6가야가 되었습니다.
가야가 이렇게 늘어난 것은 우연히 고령과 김해에 있던 나라 이름이 가야로 같았던 것을 보통명사로 오인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오류를 인정해 버리면 그 빈 자리를 일본서기의 임나로 채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것이 싫어서 뭉개고 있는 사이에 가야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장수가야, 운봉가야, 전북가야 등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