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사체 암매장 의혹 장소에 대한 검찰 조사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져
대부분이 제보자가 근거없이 제보했고, 이를 보도한 언론보도가 의혹 키워
1. 황룡강 주변
▲출처
-광주매일 1995년 12월 28일(5.18 행불자회 간사 김정길 주장 인용)
-광주일보 1995년 12월 29일(5.18 행불자회 회장 이귀복 주장 인용)
▲주장 근거
1989년 광주비향장 초소 등 황룡강 주변에서 사체 9구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암매장된 사체가 더 있을 것이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이귀복, 정수만 : 1989년 광주비행장 초소 등 황룡강 주변에서 사체 9구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암매장 가능성이 있지만 장소는 모른다.
-조성갑 : 5.18 당시에는 암매장 소문이 없었는데 뒤에 생긴 유언비어에 불과하다.
▲조사 결과
-과거 황룡강 주변이 행려병자들의 사체유기장소로 이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1989년 발굴된 사체 9구가 5.18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자료가 없고, 주장건거에 신빙성 없으며,
-장소가 특정되지 않아 발굴 불필요.
2. 화정동 잿등 부근 야산
▲출처
-광주일보 1995년 12월 29일(5.18유족회 회장 정수만 주장 인용)
▲주장근거
-김모(1994년 사망) 씨로부터 자신이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고 차량 5~6대에 싣고 온 사체를 암매장했다고 들었다.
▲피조사자 및 조사 내용
-정수만 : 그와 같은 말을 들은 일 없고 광주일보와 면담한 바 없다.
▲조사결과
-근거없음
3. 화정동 통합병원 부근
▲출처
-전남일보 1996년 1월 10일(송선태 주장 인용)
▲주장 근거
-조규영으로부터 화정동 통합병원 부근이 사체가 암매장되었다는 제보가 있었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송선태 : 조규영으로부터 “1980년 5월 19일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고 차량에 싣고 온 사체 200~300구를 암매장한 것을 목격하였다”고 전해들었다.
-김영창 : 조규영으로부터 위 사실을 전해 듣고 1992년도에 함께 현장 확인을 하였다.
▲조사 결과
-목격자인 조규영이 1993년 사망하여 전문진술에 불과하고, 전문진술 내용도 1980년 5월 19일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행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믿기 어려우며, 송선태와 김영창에게 구덩이를 판 사람을 다르게 진술하고 있는 점, 송선태가 확인한 결과 1980년 당시 조규영은 포크레인 자격증 미소지자였고, 제보 받은 정상용 의원 보좌관 신분인 위 송선태도 신빙성이 없오 발굴하지 않았다는 점 등에 비추어 발굴 불필요.
4. 주남마을 뒤 부엉산 등
▲출처
-광주일보 1995년 12월 29일(최영신 7공수 33대대 중사, 당시 앰뷸런스 운전사 박대성 주장 인용)
▲주장근거
-5월 24일 주남마을 뒷산에서 시민군 2명을 사살해 암매장했다(최영신).
-사병으로부터 암매장된 사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박대성).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조성갑 : 주남마을 뒷산 부근에서 시체 10구를 발굴한 일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암매장되었다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박대성 : 길 옆 고랑에 있는 사체 10여구를 앰뷸런스에 싣고 왔다.
▲조사 결과
-가매장되었던 사체는 모두 발굴한 것으로 보이고, 암매장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발굴 불필요.
5. 교도소 부근 등
▲출처
-광주일보 1995년 12월 29일(이상래 3공수 본부대 일병 주장 인용)
-서울지검 상황정리 p106(조성갑의 국회청문화 증언)
▲주장 근거
-5월 21일 4명의 사체를 교도소 밖 소나무 숲에 매장했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조성갑 : 교도소 부근에서 가매장된 사체 10구를 발굴한 일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암매장되었다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조사결과
-가매장되었던 사체는 모두 발굴된 것으로 보이고, 암매장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발굴 불필요.
6. 송암동 분뇨처리장 부근
▲출처
-5.18기념재단 제보(김상률 주장 인용)
-당청에서 진술(김행남)
▲주장근거
-사체를 인분통에 암매장했다(김상률).
-분뇨처리장 부근에 사체가 여러 구 있었는데 분뇨처리장에 암매장했다는 소문이 있다(김행남).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김상률, 김행남 : 5월 23일 11시에 분뇨통 부근에 있던 시체가 17시에는 없어지고 부근에서 군인들이 서성거렸고, 2개월 후 시에서 분뇨통을 메워 버렸으므로 사체를 암매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성갑 : 나와 마을주민들이 사건 직후 분뇨처리장 내부에 사체 존재 여부를 확인하였으나 암매장 사체는 없었다.
▲조사 결과
-암매장 사체가 없었음이 공무원에 이하여 사후 확인되었으므로 발굴 불필요.
7. 3특전여단 주둔지
▲출처
-서울지검작성 광주상황 쟁점별 정리 p106(임수원 3특전여단 11대대장 주장 인용)
▲주장근거
-3특전여단 소속 11대대 주둔지 부근에서 사살된 민간인 사체 2구를 가매장하였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조성갑 : 3특전여단 주둔지인 교도소 부근에서 가매장된 사체 10구를 발굴한 일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암매장되었다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임수원(청문회 진술) : 여단장 지시에 따라 사체 2구를 교도소 부근에 가매장하고 표시하였다.
▲조사결과
-가매장되었던 사체는 모두 발된 것으로 보이고, 암매장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발굴 불필요.
8. 나주 남평
▲출처
-5.18기념재단 제도(제보자 전화번호 524-01○○만 적시되어 있음)
▲주장근거
-1980년 5월 19일경 나주 남평 부근에서 공수대원들이 큰 웅덩이를 파 놓았는데 나중에 매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체를 암매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국영만 :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산 위에 군인들이 포크레인으로 큰 웅덩이를 파 놓은 것으로 보아 그곳에 사체를 암매장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사결과
-추측에 불과하고 장소가 특정되지 않아 발굴 불필요.
9. 상무대 주변
▲출처
-광주일보 1995년 12월 29일
▲주장근거
-상무대 주변 백일사격장에서 가매장된 사체 11구를 발굴한 일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암매장되었다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다(조성갑).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조성갑 : 상무대 주변 백일사격장에서 가매장된 사체 11구를 발굴한 일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암매장되었다는 자료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조사결과
-가매장되었던 사체는 모두 발굴된 것으로 보이고, 암매장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발굴 불필요.
10. 공용터미널 부근
▲출처
-무등일보 1995년 12월 27일
▲주장근거
-계엄사 상황일지에 공용터미널 지하실에 사체 18구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처리에 관하여는 언급이 없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조성갑 : 공영터미날 욕조 안에 있던 남자 사체 1구를 발견하였으나 그 외 사체 암매장 흔적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조사결과
-암매장에 관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려움.
11. 광주 변전소 앞
▲출처
-무등일보 1995년 12월 27일
▲주장근거
-군 관계자료에 의하면 광주변전소 확보작전 때 2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검찰 수사과정에서는 단순히 군 투입만 언급한 것으로 보아 사체 2구를 암매장했을 것이다.
▲피조사자 및 조사내용
-없음.
▲조사결과
-암매장에 관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려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