熊津都督府 교정
by Silla on 2025-04-02
ᐥ삼국사기 웅진도독부 支潯州에는 태안반도 일대와 섬진강 상류 지역이 섞여 있다. 支潯縣은 섬진강 상류에 있었으므로 태안반도 일대의 지역이 支潯州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삼국사기 웅진도독부 東明州에는 熊津縣이 들어 있다. 이는 熊津과 東明이 별개의 도독부였다는 이전의 기록과 모순된다. 熊津州를 따로 만들어 삼국사기가 東明州에 넣은 현을 그곳으로 옮기고 東明州에는 삼국사기가 支潯州에 넣은 태안반도 일대의 지역을 옮기면 모순이 해결된다.ᐥ

한국사DB의 삼국사기 주석에는 支潯州의 네 현에 대해 위치 비정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❶馬津縣 예산군 예산읍
❷巳汶縣 예산군 고덕면
❸隆化縣 예산군 신양면
❹支潯縣 예산군 대흥면

이 위치 비정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馬津縣夲孤山과 巳汶縣夲今勿 두 구절에서 출발한다.

百濟 熊川州 任存城 烏山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❶馬津縣 夲孤山
新羅 熊州 任城郡 本百濟任存城 今大興郡
新羅 熊州 任城郡 孤山縣 本百濟烏山縣 今禮山縣
烏山→馬津→孤山→禮山

百濟 熊川州 馬尸山郡 今勿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❷巳汶縣 夲今勿
新羅 熊州 伊山郡 夲百濟馬尸山郡
新羅 熊州 伊山郡 今武縣 夲百濟今勿縣 今徳豊縣
今勿→巳汶→今武→徳豊

孤山은 원래 烏山인데 태안반도 인근의 禮山이 되었고 今勿은 今武를 거쳐 禮山 인근의 徳豊이 되었다.
따라서 馬津縣이 본래 孤山이었고 巳汶縣이 본래 今勿이라면 이 두 현도 각각 禮山과 徳豊이 된다.
이어서 이 두 현이 속한 支潯州도 이 지역에 있게 되고 이 支潯州에 속한 隆化縣과 支潯縣도 이 지역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支潯州의 隆化가 되었다가 신라의 青䧺을 거쳐 왕고의 巨寧이 된 居斯勿은 섬진강의 상류에 있었다.

百濟 完山州 任實郡 居斯勿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❸隆化縣 夲居斯勿
新羅 全州 任實郡 青䧺縣 夲百濟居斯勿縣 今巨寧縣
居斯勿→隆化→青䧺→巨寧

청구도(1834)에 섬진강 상류의 任實郡 只沙面에 古居寧縣이 표기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隆化縣은 한국사DB에 주석된 예산군 신양면이 아니다.
그렇다면 支潯州에 속한 다른 현에 대해서도 그 위치로 섬진강 상류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마침 馬津은 백제 때 居斯勿과 함께 任實郡에 속했다는 馬突에 잘 어울린다.

百濟 完山州 任實郡 馬突縣 一云馬珍
熊津都督府 支潯州 ❶馬津縣 夲孤山
新羅 全州 任實郡 馬霊縣 夲百濟馬突縣
馬突(馬珍)→馬津→馬霊

馬津은 馬珍의 오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夲孤山은 잘못 들어간 설명일 것이다.
삼국사기가 馬珍을 孤山으로 오인했을 과정은 아래의 두 기록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0548.01 三國史記(1145) 百濟
髙勾麗王平成 與濊謀 攻漢北獨山城 王遣使請救於新羅 羅王命将軍朱珍 領甲卒三千 發之 朱珍日夜兼程 至獨山城下 與麗兵一戰 大破之

0548.04.03 日本書紀(720)
然馬津城之役 (正月辛丑 高麗率衆 圍馬津城) 虜謂之曰 由安羅國與日本府 招來勸罰

연도가 같고 상황이 비슷한 이 두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본다면 獨山과 馬津은 같은 곳이다.
나아가 완산주馬突(馬珍)→지심주□□→전주馬霊의 馬珍을 이 馬津으로 생각하고 馬津의 이칭으로 간주한 獨山을 孤山의 이칭으로 생각한다면 熊津都督府 支潯州 馬津縣 夲孤山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馬津을 웅천주烏山→지심주□□→웅주孤山→왕고禮山의 □□에 넣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

百濟 完山州 任實郡 馬突縣 一云馬珍
熊津都督府 支潯州 ❶馬珍縣
新羅 全州 任實郡 馬霊縣 夲百濟馬突縣
馬突(馬珍)→馬珍→馬霊

그런데 백제때 이 居斯勿縣과 馬突縣을 거느리고 있던 任實郡이 신라때 青䧺縣과 馬霊縣을 거느린 任實郡이 되기 전에 熊津都督府때 무엇이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반도의 서쪽에서 섬진강 상류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任實이 빠졌을 리는 없을 테니 支潯州에 들어있긴 있었을 것이다.
支潯州의 여러 현 중에서 찾아보면 支潯縣이 任實로 가장 잘 어울린다.

百濟 完山州 任實郡 馬突縣(一云馬珍) 居斯勿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❹支潯縣 夲只彡村
新羅 全州 任實郡(夲百濟郡) 馬霊縣(夲百濟馬突縣) 青䧺縣(夲百濟居斯勿縣 今巨寧縣)
任實→支潯→任實

한편, 支潯州의 巳汶縣 또한 예산군 고덕면보다 섬진강 상류의 남원이 더 잘 어울린다.
巳汶은 己汶의 오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서 공주의 백제와 고령의 가라가 패권을 다투었다는 己汶은 정황으로 보아 소백산맥의 통로에 있는 남원이 어울린다.
궐지지에 나오는 백제 基汶河에 대한 설명도 남원을 지나는 섬진강과 일치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己汶은 가라에서 竒物로도 표기되었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편찬자가 今勿을 竒物 즉 己汶으로 오인했을 수 있다.

百濟 完山州 南原 一云古龍郡
熊津都督府 支潯州 ❷己汶縣 夲今勿
新羅 南原小京 夲百濟古龍郡 今南原府
古龍→己汶→南原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巳汶縣을 己汶縣으로 바꾸고 夲今勿은 빼거나 一云竒物이라 하면 자연스럽다.
그리고 南原은 신라가 붙인 지명이므로 백제 完山州에 있을 수 없다.
南原 一云古龍郡은 古龍郡으로만 적혀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추론을 종합해 보면, 아래 지명들은 支潯州에 있는 게 맞다.

百濟 完山州 任實郡 馬突縣 一云馬珍
熊津都督府 支潯州 ❶馬珍縣
新羅 全州 任實郡 馬霊縣 夲百濟馬突縣
馬突(馬珍)→馬珍→馬霊

百濟 完山州 古龍郡
熊津都督府 支潯州 ❷己汶縣
新羅 南原小京 夲百濟古龍郡 今南原府
古龍→己汶→南原

百濟 完山州 任實郡 居斯勿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❸隆化縣 夲居斯勿
新羅 全州 任實郡 青䧺縣 夲百濟居斯勿縣 今巨寧縣
居斯勿→隆化→青䧺→巨寧

百濟 完山州 任實郡
熊津都督府 支潯州 ❹支潯縣 夲只彡村
新羅 全州 任實郡 夲百濟郡
任實→支潯→任實

한편, 支潯州에는 태안반도 일대의 지명도 들어 있다.

百濟 熊川州 任存城 烏山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⓵孤山
新羅 熊州 任城郡 本百濟任存城 今大興郡
新羅 熊州 任城郡 孤山縣 本百濟烏山縣 今禮山縣
烏山→□□→孤山→禮山

百濟 熊川州 馬尸山郡 今勿縣
熊津都督府 支潯州 ⓶今勿
新羅 熊州 伊山郡 夲百濟馬尸山郡
新羅 熊州 伊山郡 今武縣 夲百濟今勿縣 今徳豊縣
今勿→□□→今武→徳豊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지역을 같은 주로 묶지는 않았을테니, 支潯州에 들어있는 태안반도 지역은 원래 별도의 주에 속했을 것이다.
백제의 古沙城, 得安城, 久知下城(卞城), 刀先城(力光城), 熊津城(固麻城) 이렇게 5方은 당나라가 熊津, 馬韓, 東明, 金漣, 德安 이렇게 5都督府로 바꾸었는데, 얼마가지 않아 東明州, 支潯州, 魯山州, 古四州, 沙泮州, 帶方州 그리고 分嵯州로 재편했다.
그런데 나중에 재편되었다는 東明州에는 熊津縣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熊津과 東明이 별개의 도독부였던 이전과 모순된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의 東明州는 熊津州의 오기일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東明州가 있기는 있었을 듯하므로 삼국사기에서 支潯州로 분류된 태안반도 지역을 東明州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支潯州로 분류된 현 중에서 백제의 熊川州와 신라의 熊州로 연결되어 東明州로 어울리는 지역은 다음과 같다.

百濟 熊川州 任存城 烏山縣
熊津都督府 東明州 ⓵孤山
新羅 熊州 任城郡 本百濟任存城 今大興郡
新羅 熊州 任城郡 孤山縣 本百濟烏山縣 今禮山縣
烏山→□□→孤山→禮山

百濟 熊川州 馬尸山郡 今勿縣
熊津都督府 東明州 ⓶今勿
新羅 熊州 伊山郡 夲百濟馬尸山郡
新羅 熊州 伊山郡 今武縣 夲百濟今勿縣 今徳豊縣
今勿→□□→今武→徳豊

百濟 熊川州 構郡 伐首只縣
熊津都督府 東明州 ⓷子來縣 夲夫首只
新羅 熊州 槥城郡 夲百濟槥郡
新羅 熊州 槥城郡 唐津縣 夲百濟伐首只縣
伐首只→子來→唐津

한편, 백제 任存城에는 烏山縣과 古良夫里縣이 있었는데, 각각 신라 任城郡의 孤山縣과 青正縣이 되었다.
두 현은 熊津都督府에 각각 馬津縣夲孤山과 麟德縣夲古良夫里로 나타나나, 신라의 任城郡이 되는 백제 任存城은 熊津都督府에 나타나지 않는다.
왜군을 격파한 주류성 인근의 古沙夫里에 平倭縣을 설치한 것을 볼 때, 백제의 마지막 세력을 소탕한 任存城에는 平夷縣을 설치했을 듯하다.

百濟 熊川州 任存城
熊津都督府 東明州 ⓸平夷縣 夲知留
新羅 熊州 任城郡 本百濟任存城 今大興郡
任存→平夷→任城→大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