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인과 여진인은 무엇이 달랐나?
by Silla on 2020-02-09
요나라는 발해인과 여진인을 다른 방식으로 통치했다고 한다.
여기서 발해인과 여진인의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발해와 고려까지 요나라의 방식을 추정할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지방통치 방식을 군현제와 부족제로 단순화시켜 고찰해 본다.
작은 부족이 연합을 하거나 정복을 해서 규모가 커지면 중앙정치와 지방통치가 분리되게 된다. 지방통치는 부족제와 군현제가 있는데, 부족제는 부족 내에서 결정된 수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하는 방식이고 군현제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방식이다. 인류 사회에서 부족제가 군현제보다 먼저 나타났을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통치자에 대한 세습제가 선출제보다 먼저 나타난 것과 같다. 사회의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발전 단계가 다른 두 사회가 합쳐질 때 한 나라 안에서 군현제와 부족제가 병존할 수 있다. 이때 군현민에게는 중앙에서 조세와 부역을 부과하였으나 부족민에게는 그것을 부과하지 않고 때때로 특산물만 받았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부족 단위의 부대를 만들게 하여 전쟁에 동원하였다. 부족제는 느슨한 형태의 통합이기 때문에 중앙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었다.
고려는 5부족 연맹체로 출발하였다. 처음에는 왕이 나오는 부족이 일정하지 않다가 나중에 하나의 부족으로 고정되었다. 지방통치는 당연히 부족제로 시작했을 것이고 점차 중국의 군현제를 도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복속시킨 종족이 부족의 전통이 강할 경우 그들은 여전히 부족제로 통치하였을 것이다. 말갈의 여러 부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이중적 지방통치는 이후의 발해와 요나라에도 이어졌다.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國夲有五部三十七郡二百城七十六萬戶
백제는 원래 5부 37군 2백 성 76만 호로 되어 있었다.

구당서(舊唐書 945)
高麗國舊分爲五部有城百七十六戶六十九萬七千
고려국은 지난날에 5부로 나뉘어져 176성 69만 7천호가 있었다.
乃分其地置都督府九州四十二縣一百
이에 그 땅을 나누어 9도독부 42주 1백현으로 하고 또 안동도호부를 두어 총관케 하였다.

신당서(新唐書 1060)
地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발해의 국토는 5경 15부 62주다.

중국의 현 대신 고려와 백제는 성이 기본 단위가 되어 있었고 발해는 주가 기본 단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나라는 5도(道) 6부(府) 156주(州 軍 城) 309현(縣)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 요·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
요나라의 영역 내에 이주된 발해인은 州縣民으로 편제되었다. 반면 요나라의 영역 내에 있는 숙여진의 경우, 부족 및 부락 단위로 집단적으로 예속되었다. 조세나 역이 부과되지 않았으며 전쟁이 있을 때 병력이 차출되었고 때때로 특산물을 바쳤다. 부족 내에서 재래의 조직과 생활을 유지하면서 그 수장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예속되었다. 요나라의 영역 밖에 있던 생여진의 경우, 부족 단위로 부용해 때때로 공납을 바쳤지만 반역과 복종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