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2.07 日本書紀(720)
by Silla on 2020-02-09
이 달 대장군 기남마려숙녜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치리에서 출동하고 부장군 하변신 경부는 거증산으로부터 출동하도록 하여 신라가 임나를 공격한 상황에 대하여 문책하고자 하였다. 드디어 임나에 도착하여 천집부수 등미를 백제에 보내어 군사계책을 약속하게 하였다. 등미는 처가에 묵었는데 봉인한 서신과 활 및 화살을 길에 떨어뜨렸다. 신라가 군사계획을 모두 알고 갑자기 군사를 크게 일으켰으나 얼마 후에 패하였으므로 항복하여 귀부하기를 빌었다.

기남마려숙녜가 승리를 거두고 나서 군사를 돌려 백제의 군영에 돌아갔다. 군중에 명을 내려 “무릇 이겨도 패하는 것을 잊지 말고 편안할 때도 반드시 위험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옛날의 훌륭한 가르침이다. 지금 처해 있는 땅은 들개와 이리와 같이 사나운 무리들과 이웃해 있으니 가볍고 소홀히 하여 변란이 일어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있으랴. 하물며 또 태평한 시대에도 칼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법이니 무릇 군자가 무기를 갖추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마땅히 깊이 경계하고 이 명령을 받드는 데 힘쓰라”라고 하였다. 병졸들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고 섬겼다.

하변신경부는 홀로 나아가 이곳저곳에서 싸워 가는 곳마다 모두 함락시켰다. 신라가 문득 흰 깃발을 들고 무기를 던져버리고 항복했는데 하변신경부는 원래 군사에 밝지 못하여 마주 대하여 흰 기를 들고 헛되이 혼자 앞으로 나아갔다. 신라 장군이 “장군 하변신이 지금 항복하려고 한다”고 하고는 진군하여 역습하여 싸웠다. 매우 날쌔고 빠르게 공격하여 깨뜨렸는데 맨 앞선 부대는 패한 바가 매우 많았다. 왜국조 수언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군사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신라 장군이 손에 갈고리창을 쥐고 성의 해자까지 뒤쫒아와 창을 휘두르며 공격하였다. 수언은 날랜 말을 타고 있었으므로 성의 해자를 뛰어 건너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신라 장군이 성의 해자가에 서서 “구수니자리(久須尼自利)”(이는 신라말로 자세하지 않다)라고 탄식하였다.

이에 하변신은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와 들에 급히 군영을 만들었다. 이때 병졸들은 모두 서로 속이고 업신여기며 우러러 따르지 않았다. 신라 장군이 스스로 군영에 나아가 하변신경부 등과 그를 따라왔던 부인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는 아버지와 아들,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도울 수가 없었다. 신라 장군이 하변신에게 “너의 목숨과 부인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아끼는가”라고 묻자 “어찌하여 한 여자를 아껴 화를 취하겠습니까. 어떤 것도 목숨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라 대답하고 첩으로 삼기를 허락하였다. 신라 장군은 마침내 벌판에서 그 여자를 간음하였다. 여자가 후에 돌아가니 하변신이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 부인은 매우 부끄럽고 한스럽게 여겨 따르지 않고 “옛날에 당신이 저의 몸을 가볍게 팔았는데 지금 무슨 낯으로 서로 만나겠는가”하고는 마침내 승락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인은 판본신의 딸인데 이름을 감미원이라 한다.

함께 사로잡혔던 조길사 이기나는 사람됨이 용맹하여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신라 장군이 칼을 빼서 목을 치려고 하며 억지로 잠뱅이를 벗기고 이어서 엉덩이를 일본으로 향하게 하고 “일본 장군은 내 엉덩이를 물어라”라고 크게 부르짖게 하자(叫는 울부짖으며 소리친다는 말이다) 곧 “신라왕은 내 엉덩이를 먹어라”고 소리쳤다. 비록 고통과 핍박을 받았으나 여전히 앞에서와 같이 소리쳤다. 이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아들 구자 역시 그의 아버지를 안고서 죽었다. 이기나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빼앗기 어려운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이로 말미암아 특히 여러 장수들이 가슴 아파하는 바가 되었다. 그의 아내 대엽자도 역시 잡혔는데 비통하게 노래하기를 “가라구이(柯羅俱爾 からくに 한국)의 성 위에 서서 대엽자는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들며 일본으로 향하네”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 화답하기를 “가라구이의 성위에 서서 대엽자는 머리에 쓰는 천을 흔들어 보이며 난파로 향하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