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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4-18
일본서기 562년 7월.
이 달에 대장군 기남마려숙녜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치리에서 출동하게 하고, 부장군 하변신 경부는 거증산에서 출동하게 하여 신라가 임나를 공격한 사태를 문책하고자 하였다. 임나에 도착하자 천집부수 등미를 백제에 보내 군사계획을 약속하게 하였다. 등미는 처가에 묵었는데, 봉인한 서신과 활 및 화살을 길에서 빠뜨렸다. 그래서 신라가 군사계획을 모두 알고, 갑자기 군사를 크게 일으켰으나, 얼마 후에 패하였으므로, 항복하여 귀부하기를 빌었다.

기남마려숙녜는 승리를 거두고 나서, 군사를 돌려 백제의 군영에 돌아갔는데, 군중에 명을 내려,
“무릇 이겨도 지는 것을 잊지 말고, 편안할 때도 위기를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옛날의 훌륭한 가르침이다. 이곳은 승냥이, 이리와 같은 무리들과 가까이 있으니, 가볍고 소홀히 하다가 변란이 일어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있으랴. 태평한 시대에도 칼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법인데, 군자가 무기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은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마땅히 깊이 경계하고 이 명령을 받드는 데 힘쓰라”고 하니, 군사들은 모두 믿고 복종하였다.




하변신 경부는 독단적으로 여러 곳으로 가서 싸웠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 함락시켰다. 마침내 신라가 무기를 버리고 흰 기를 들어 항복하였는데, 하변신 경부는 군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자신도 흰 기를 들고 마주보며 나아갔다. 신라 장군이 “하변신 장군이 항복하려 한다”고 하고 역습하였다. 매우 빠르고 예리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앞선 부대는 크게 패하였다.

왜국조 수언은 구할 생각을 않고 군사를 버리고 도망갔다. 신라 장군이 손에 갈고리창을 들고 성의 해자까지 쫓아와 창을 휘두르며 공격하였다. 수언은 날랜 말을 타고 있었으므로 성의 해자를 뛰어넘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신라 장군이 성의 해자 가에 서서 “쿠스니지리”라고 탄식하였는데, 이는 신라말이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하변신은 군사를 이끌고 후퇴하여 들에 급히 군영을 만들었다. 이때 병졸들은 서로 속이고 업신여겨 따르지 않았다. 신라 장군이 군영에 가서 하변신 경부 등과 그를 따라왔던 부인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때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부부 사이에도 서로 도울 수가 없었다. 신라 장군이 하변신에게, “너의 목숨과 부인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아끼는가”라고 묻자, “어찌하여 한 여자를 아껴 화를 당하겠습니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라 대답하고 첩으로 삼기를 허락하였다. 신라 장군은 마침내 벌판에서 그 부인을 간음하였다.

부인이 후에 돌아가니, 하변신이 그때 일을 빌고자 하였다. 부인은 매우 치욕스럽고 한스럽게 여겨, 받아주지 않고, “옛날에 당신이 저의 몸을 가볍게 팔았는데 지금 무슨 얼굴로 서로 보겠는가”하고는, 마침내 용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인은 판본신의 딸인데 이름을 감미원이라 한다.

함께 사로잡힌 조길사 이기나는 강인한 인물이라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신라 장군이 칼을 빼 목을 치려고 하며 억지로 잠뱅이를 벗기고 엉덩이를 일본으로 향하게 한 다음, “일본 장군은 내 엉덩이를 물어라”라고 크게 소리치게 하자, 오히려, “신라왕은 내 엉덩이를 먹어라”라고 소리쳤다. 고통과 핍박을 받고도 여전히 먼저와 같이 소리쳤다. 이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아들 구자 역시 아버지를 안고 죽었다. 이기나를 굴복시키기가 이처럼 어려웠고 이를 본 여러 장수들이 마음 아파하였다. 그의 아내 대엽자 역시 사로잡혔는데, 비통하게 노래하기를, “가라의 성 위에 서서, 대엽자는 목도리를 풀어 흔드누나. 일본을 향해,”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 화답하기를, “가라의 성 위에 서서, 목도리를 풀어 흔드는, 대엽자가 보이누나. 난파를 향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