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훈요십조에서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바깥이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모두 거스르게 뻗어 있어 국가의 변란을 일으킬 수 있고 또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있어 왕실을 침범할 우려가 있으므로 조정에 참여하거나 왕후가 되거나 외척과 혼인을 하거나 해서 나라의 정사를 잡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차령과 금강 이남이라고 하면 충청도도 많이 포함되는데, 이상하게도 이 차별 지역은 이씨조선에 와서 전라도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왕씨고려의 현종 때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란이 침공해 오자 현종은 나주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삼례역에 이르자 호종하던 나주 출신 박섬이 “전주는 옛 백제이므로 태조께서도 싫어하셨으니 주상께서는 행차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니 현종은 전주에 들르지 않고 장곡역으로 바로 갔습니다. 박섬은 왕건이 경계한 지역이 전주일 뿐이고 경계한 이유는 자신과 경쟁하던 견훤백제였기 때문으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高麗史」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參與朝廷 與王侯國戚婚姻
則或變亂國家
或㗸統合之怨 犯蹕生亂
「高麗史」
至參禮驛 朴暹奏曰
全州卽古百濟 聖祖亦惡之 請上勿幸
王然之 宿長谷驛
「高麗史」
暹
自安北遁還京都
挈家往其鄕務安縣
道逢車駕 隨至羅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