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청년들 ‘인서울 러시’…지방 국립대 죽고 지역경제 황폐화 악순환

송윤경 기자 kyung@ kyunghyang.com

서울은 한국 사회의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도시다. 인구의 20%가 서울에 산다. 경기도·인천을 합한 수도권에는 남한 인구의 49%가 모여 있다. 수도권의 힘은 사회진출을 앞둔 청년층에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20~34세 청년의 53%가 수도권에 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머무는 젊은이들까지 감안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국토의 88%를 차지하는 비수도권에 전체의 절반이 안되는 청년들이 살고 있다. 부산에 사는 박모씨(25)가 지역 청년 다수의 호소와 갈증일 거라며 전한 말은 “서울에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 남겨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구가 줄어드니 안 그래도 낙후했던 지역경제는 더 침체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역 공동화’와 청년문제는 맞물려 있다. 특히 대학입시와 취업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주요 고리다. 떠난 청년도, 남은 청년도 괴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설 자리 밀려가는 지역국립대 왜?

“친척 형이 99학번인데 인서울 대학과 경북대 고민하다가 경북대 갔어요. 그런데 13학번이던 친척 동생은 경북대 붙고 나서 재수학원 등록하더라고요.”(대구 사는 30세 이시훈씨)

“아버지가 지역 국립대 출신이에요. 제가 서울에 있는 여대 가겠다고 하니까 ‘뭐하러 집 떠나서 비싸게 다녀야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 시절엔 각 도에 하나씩 있는 국립대가 좋은 대학이었지만 이제는 아닌데….”(원주에서 자라 서울로 대학 간 24세 ㄱ씨)

각 지역 국립대는 지역인재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전주에서는 전북대가 서울대다” “대구에서는 경북대를 제일 알아준다”는 얘기가 여전히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역 국립대의 위상은 어떠한가. 지난 30여년간 크게 약화됐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1986년 12월30일 경향신문에 ‘내 점수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나’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대학입시사의 배치표를 보면 서울대 36개과, 연세대 12개과, 고려대 7개과에 이어 부산대(영어교육·국어교육), 경북대(영어교육·국어교육)가 등장한다. 전남대 영어교육과 역시 고려대 영어교육과와 같은 구간에 자리했다. 10년 후 상황은 변했다. 1995년 대성학원이 공개한 배치표를 보면 부산대·경북대 영어교육과는 성균관대·서강대·이화여대·중앙대·경희대의 인기학과 다음으로 밀렸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인서울’ 대학에 앞자리를 내준 상태다.

커다란 변화지만 지역 국립대 쇠퇴의 근본적인 이유를 체계적으로 밝힌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자와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역 낙후 심화’와 ‘자원의 서울 쏠림’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중등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가현씨(25)가 18일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 지난해 전남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이곳에서 홀로 자취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중등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가현씨(25)가 18일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전라도에서 나고 자라 지난해 전남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이곳에서 홀로 자취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통계분석으로 1995년 즈음부터 ‘교육’이 지역 인구 이동에 영향을 주었음을 밝힌 권상철 교수(제주대 지리교육과)는 지역의 낙후성이라는 ‘상수’에 교통발달 등의 ‘변수’가 더해진 결과로 해석한다. 권 교수는 “지역경제는 지속적으로 기반이 허약했다”며 “교통이 발달해 이동이 쉬워지고, 1990년대에 베이비붐 세대의 소득수준이 비교적 좋아지면서 서울권 대학으로의 진학 열풍이 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에 정보와 자원이 편중돼 있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대입 분석가인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스펙 시대’ 변수를 중요하게 봤다. 유 소장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대기업의 채용인원이 줄자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이 과정에서 영어 성적, 자격증 취득 등 스펙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왔다”면서 “사교육 자원과 관련 정보가 서울에 많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인서울’ 대학생들이 경쟁에서 유리해진 점이 있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경북대에서 취업지원을 맡고 있는 김기동 팀장(58)은 ‘수도권 규제완화’가 지역 국립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도권 규제완화로 구미에서 다수 기업이 빠져나가면서 과거에 비해 대기업의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할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수도권에 연구·개발(R&D)센터가 들어서면 고급인력을 데리고 오는 데 도움될 것”이라면서 수도권 규제를 크게 풀었고, 지역에 둥지를 틀고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던 대기업들의 R&D센터는 수도권에 몰리기 시작했다. 삼성에서는 경북 구미공단의 삼성전자 모바일 연구소 인력, 경남 창원의 삼성테크윈 연구인력 상당수를 수도권으로 옮겼다. 포스코 역시 송도에 R&D센터를 세워 포항과 광양의 연구 인력을 재배치했다. 그나마 숨통을 틔워줬던 지역 인재들의 고용문은 더 좁아진 것이다.

■‘인서울’ 러시에 지역경제는 악순환

지역 국립대 쇠퇴는 지역 황폐화의 ‘결과’임과 동시에 지역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수도권 대학 진학 열풍의 경제적 결과를 분석한 연구 ‘지역인재의 수도권 대학 진학과 지역경제력 유출효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2003, 김영철·이민환)를 보면, 대구는 연간 4065억원씩 생산성이 줄어들고 있다.

대입 단계에서 시작되는 ‘인서울 러시’는 졸업 후 취업 문턱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적성에 맞으면서도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수도권에 많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취업 준비 단계에서라도 서울행을 택하는 것이다. ‘대학졸업자의 지역 간 취업 이동 요인 분석’(2012, 심재헌·김의준)을 보면 수도권 대졸자의 94%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그러나 비수도권 대졸자는 74%만 해당 지역에 잔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에는 심각한 취업난으로 등록금이 싸고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지역 국립대의 경쟁률이 조금 오르는 흐름도 포착된다. ‘종로학원하늘교육’ 분석 결과, 6.3 대 1 정도였던 2013년 국립대 경쟁률(서울대 제외)은 지난해 7 대 1가량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국립대 부활’이라고 보기 힘들다. 바람직한 것은 지역에서 대학을 나와 그 지역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구하는 이른바 ‘역내 완결형’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충북발전연구원의 최은희 박사는 “지역을 잘 알고 정착하는 청년이 지역인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면서 “대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을 지원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들부들 청년]][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청년들 ‘인서울 러시’…지방 국립대 죽고 지역경제 황폐화 악순환
■기껏 서울 와도, 월세·등록금 벌이에 알바 전전…“스펙 관리·인턴은 꿈일 뿐”

수도권으로의 과집중은 고향을 떠난 청년도 고달프게 한다. 서울의 높은 사립대 등록금과 주거비용을 감당하느라 ‘서울 토박이’들보다 더 거친 삶과 경쟁에 뛰어드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월세와 등록금을 벌어보려는 아르바이트에 치여 스펙 관리나 인턴 경험은 꿈도 못 꾸고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청년 상당수가 지역 출신이다. 이희영씨(가명·34)는 제주에서 자라 서울에서 대학과 취업 문턱을 넘었다. 그는 “일자리와 문화생활 등의 조건이 비슷했다면 아마 살던 곳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립대 등록금과 자취 비용을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방’을 옮기느라 이삿짐 싸기에 도가 텄다고 했다. 이씨는 “서울에 대한 환상은 온 지 두세 달 만에 금세 깨졌다”면서 “삭막한 이곳의 삶이 고향에서의 삶보다 더 행복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행을 택하는 지방대생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이나현씨(27)는 전북대를 졸업하고, 다시 “사교육을 받고 스스로를 다그치기 위해” 서울 자취를 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계사 2차 시험은 첨삭을 받아야 하는데 지역에선 대학은 물론이고 사교육시장에서도 그런 기회가 없다”면서 “시험 때문에 2년간 종로 고시원에서 자취하기는 했지만 돈을 버려가며 공부한다는 생각에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취업 준비를 위해서도 서울로 원정 와야 하는 답답함을 비친 것이다.

전남대를 졸업한 김가현씨(25)는 “이곳엔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선생님을 하려면 수도권에서 해야 한다”는 공무원 아버지의 권유로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서울에 대해 “무표정한 얼굴로 떼를 지어 빨리 걷는 곳”이라며 “삭막하고 여유가 없다.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살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만약에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래도 서울에서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경쟁하고 살면 피곤하겠지만 결국은 그 아이도 한국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살아남으려면 서울이 확실히 나은 것 같아요.” 김씨의 대답은 “서울 아이들은 자기를 관리하는 기술이 다르다. 지역 아이들은 따라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는 이나현씨의 토로와도 일맥상통한다. ‘서울공화국’에서 서울은 경쟁과 과밀의 고통이 몸으로 파고드는 곳이다. 헬조선은 곧 헬서울·헬지방이다. 지역에서 자라 떠난 청년도, 남은 청년도 괴로운 구조가 ‘대한민국의 청년 문제’에 포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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