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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02-18
윤관이 설치한 길주는 지금의 길주 북쪽 40리에 있었고 웅주는 지금의 길주 남쪽에 있었습니다. 웅주는 또 동계인 화곶령 인근의 화곶산 아래에 있었다고 하므로 지금의 길주 동쪽에 있는 장덕산 아래에 세종 때에 설치한 웅평역이 웅주로 어울립니다. 그러나 공험진을 설치한 후 그곳에 정계비를 세운 것으로 보아 공험진이 웅주보다 더 화곶령에 가까웠던 듯합니다.
북계 아래에 있던 옛 길주를 구원하러 가는 길은 지금의 길주 남쪽에서 부서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인데 그 도중에 공험진이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공험진의 위치로는 지금의 길주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高麗史」
東至火串嶺 北至弓漢伊嶺
火串山下 號雄州 弓漢伊村 號吉州
立碑于公嶮鎭 以爲界至

女眞復聚遠近諸部 圍吉州數月
延寵聞之 憤然欲行 王復授鈇鉞遣之
行至公嶮鎭 賊遮路掩擊 我師大敗

置雄吉州等處管軍民萬戶府(州在北 雄州在南)

「世宗實錄地理志 吉州」
改吉州牧 古州治在西之委
今徙于夫瑞坪 南距舊治四十里
浮瑞川(在州西)
驛 雄平(今上壬寅始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