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추모왕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고려에서 나와 각각 미추홀과 위례성에 정착했다가 위례성으로 합쳤습니다.
훗날 한강 이남으로 도읍을 옮긴 것으로 보아 이 위례성은 한강 이북에 있었습니다.
도읍을 옮긴 이유는 북쪽으로부터 말갈의 침공을 자주 받았기 때문인데, 말갈이 있을 만한 곳은 철원 평야고 그곳에서 한강에 이르는 길은 중량천을 따라 내려오는 길입니다.
그 길의 끝에 아차산이 있고 그 아래에 낙랑고려의 북한산군, 신라의 한양군 그리고 왕씨고려의 양주로 이어지는 요충지가 있었습니다.
이곳이 위례성으로 어울리죠.
'북으로 한강을 띠처럼 두르고 동으로 높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으로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로 큰 바다에 막혀 있다'는 새 도읍지는 고성과 고분이 많이 출토되고 있는 한강과 남한산 사이가 어울립니다.
「三國史記」
温祚都(河南✗)慰禮城 以十臣爲輔翼 國號十濟
(遂至漢山✗) 登負兒嶽 望可居之地
(沸流欲居於海濵 十臣諌曰✗)
惟此河南之地 北帶漢水 東據髙岳 南望沃澤 西阻大海
其天險地利 難得之勢 作都於斯 不亦冝乎
(沸流不聽 分其民 歸弥鄒忽以居之✗)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軼疆境 少有寧曰
勢不自安 必將遷國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圡壤膏腴 冝都於彼 以圖久安之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