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씨고려의 기록을 편집한 고려사 세가와 열전에는 윤관이 옛 옥저의 후손들을 내쫓고 차지한 지역이 함주, 영주, 복주, 웅주, 길주, 공험진 등이며 그 끝은 공험진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왕고의 우왕이 명나라에 보낸 표문과도 어긋나지 않죠.
이 이야기에 의하면 공험진의 위치로는 지금의 길주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태종이 명나라에 보낸 진서에는 이전에 없던 공주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공주는 두만강변에 있었으므로 경계였던 공험진은 자연히 두만강 너머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훗날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공험진이 두만강 너머 700리에 있다고 되어 있죠.
공험진이 이렇게 변질된 것은 태종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훗날 대마도를 정벌할 때도 대마도가 경상도 계림에 속했었다고 우겨댔죠.
「高麗史 尹瓘列傳」
畫定地界 東至火串嶺 北至弓漢伊嶺 西至蒙羅骨嶺
蒙羅骨嶺下 號英州 火串嶺下 號雄州 吳林金村 號福州 弓漢伊村 號吉州
「高麗史 睿宗世家」
以尙書柳澤爲咸州大都督府使 置英福雄吉四州及公嶮鎭防禦使
立碑于公嶮鎭 以爲界至
「王高 禑王 表」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李朝 太宗 奏」
自公嶮鎭歷孔州吉州端州英州雄州咸州等州 俱係本國之地
「高麗史 地理志 公嶮鎭」
一云孔州 一云匡州 一云 在先春嶺東南白頭山東北 一云 在蘇下江邊
「世宗實錄 地理志 慶源」
古孔州 北距公險鎭七百里
「世宗實錄」
上王曰 對馬爲島 隷於慶尙道之雞林 本是我國之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