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8년에 高麗의 유민이 慰禮에서 세운 百濟는 북쪽으로부터 靺鞨의 침략이 잦아지자 295년에 漢山 아래에 목책을 세우고 慰禮城의 주민들을 그곳으로 이주시킵니다.
이후 百濟는 남쪽으로 뻗어나가 308년에 馬韓을 병합하고 영토를 노령까지 확장시키죠.
近肖古王에 이르러서는, 369년에 倭와 함께 반도 남부를 정벌하고 각각 영산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나눠 차지하였고, 371년에는 高麗의 平壤을 침공하여 故國原王을 전사시켰으며, 372년에는 東晉에 사신을 보내어 餘씨 왕성을 칭하고 樂浪太守의 작위를 받습니다.
백제가 371년에 漢城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편, 한강 남쪽에 있는 풍납토성은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이러한 近肖古王 시기의 百濟가 아니면 쌓을 나라가 없습니다.
百濟의 漢城으로 풍납토성이 가장 유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0369 「日本書紀」
仍移兵西廻 至古爰津 屠南蠻忱彌多禮 以賜百濟
於是 其王肖古及王子貴須 亦領軍來會
백제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時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 自然降服
0371 「三國史記」
王與太子帥精兵三萬 侵髙句麗
근초고왕이 태자와 정예 군사 3만을 이끌고 고구려를 쳤다.
攻平壤城 麗王斯由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移都漢山
0372 「晉書」
遣使拜百濟王餘句為鎮東將軍領樂浪太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