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혁거세가 閼川 楊山村의 蘿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蘿井은 형산강과 남산 사이에 있죠.
또 삼국사기에는 하천의 범람 기록이 나오는데, 閼川의 범람 기록만 나옵니다. 경주 하천의 주류는 형산강인데, 이 형산강의 범람 기록이 빠졌을 리는 없죠.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160년에 閼川이 범람하여 민가가 떠내려갔는데, 이때 금성 북문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또 785년에는 閼川이 범람하여 서울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건너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두 기록 모두 閼川이 금성의 북쪽을 흐르는 강이라는 인상을 주는 바람에, 삼국유사는 北川을 閼川의 이칭인 듯 기술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와서는 그것이 고착되었습니다.
그러나 閼川이 범람하여 민가가 떠내려갈 때 금성의 북문은 범람과 상관없이 무너졌을 수 있고, 또 형산강은 북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형산강의 동편에 있는 월성에서 북쪽으로 20리 되는 곳은 형산강의 서편이 될 수 있죠.
1145 「三國史記」
閼川 楊山村
髙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暴雨 閼川水溢 漂流人家 金城北門自毀
周元宅於京北二十里 㑹大雨 閼川水漲 周元不得渡
1281 「三國遺事」
請密祀北川神可矣
家在川北忽川漲不得渡
1530 「新增東國輿地勝覽」
東川 一云北川 一云閼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