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은 훈요십조에서 거란은 짐승과 같은 나라이니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고려사에는 왕건이 거란의 사신 30명을 섬으로 유배보내고 선물한 낙타 50마리를 굶겨죽였는데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때문이라 되어 있어, 훈요십조에서 거란을 본받지 말라고 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죠.
왕건은 또 훈요십조에서 차령 남쪽 금강 너머 사람들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산수가 거스르게 뻗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사에는 백정의 전신인 양수척이 왕건이 제압하기 어려웠던 견훤백제의 후손인데 서북 지방에 많이 살며 거란이 침공해 오자 그들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조선왕조실록에는 역과 나루에서 천역을 하거나 부곡에 사는 천민들이 왕건을 거역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죠.
모두 정치적 보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차령 남쪽 금강 너머를 경계하라고 한 이유도 짐작하게 합니다.
산수가 거스르게 뻗어 있다는 것은 둘러대는 말일 뿐입니다.
0942 「高麗史(1451)」
契丹遣使 來遣槖駝五十匹
王以契丹嘗與渤海連和 忽生疑貳 背盟殄滅
此甚無道 不足遠結爲隣
遂絶交聘 流其使三十人于海島 繫槖駝萬夫橋下 皆餓死
0943 「高麗史(1451)」
新羅之末 衰損地德 以底於亡
契丹是禽獸之國 衣冠制度 愼勿效焉
車峴以南公州江外 山形地勢並趨背逆 人心亦然
「高麗史(1451)」
楊水尺多居興化雲中道
契丹兵至 迎降鄕導故 悉知山川要害 道路遠近
楊水尺 太祖攻百濟時 所難制者遺種也
1413 「太祖實錄」
前朝五道兩界驛子津尺部曲之人 皆是太祖時逆命者 俱當賤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