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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06-02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후 백제 왕자 부여융과 신라왕 김법민으로 하여금 맹약를 맺게 합니다.
그런데 그 장소에 대해 天地瑞祥志(666)에는 只馬縣 就利山으로 되어 있고 冊府元龜(1013)에는 熊津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舊唐書(945)에는 당나라로 갔던 부여융이 熊津城에 이르러 신라왕과 맹약하였다고만 되어 있는데, 冊府元龜는 맹약도 그곳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三國史記(1145)에는 熊津의 就利山으로 되어 있죠.
就利山이 있다는 只馬縣은 웅진도독부 노산주의 支牟縣으로 보입니다.
只馬馬知라고도 했는데, 觀世音應驗記(641⁻)에 백제가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인 듯합니다.
이러한 只馬縣, 支牟縣, 只馬馬知 그리고 枳慕蜜地는 왕궁의 유적이 있는 지금의 금마 일대가 어울립니다.
그러면 就利山은 이 유적의 북쪽에 있는 미륵산이 어울리죠.
369년에 백제 초고왕과 왜의 사신 천웅장언이 의류촌에서 만나 辟支山과 古沙山에 차례로 올라 맹약한 것과 비슷합니다.

0369 「日本書紀(720)」
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登辟支山 盟之
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 時百濟王盟之曰

0641⁻ 「觀世音應驗記」 百濟武廣王 遷都枳慕蜜地 新營精舍

0660⁻ 百濟 完山州 金馬渚郡

0664 熊津都督府 魯山州 支牟縣(夲只馬馬知)

0664 「三國史記(1145)」
至麟德元年 復降嚴勑 責不盟誓
即遣人於熊嶺 築壇共相盟㑹 仍於盟處 遂爲兩界

0665 「天地瑞祥志(666)」
大唐麟德二年秋八月 勅使劉仁願 新羅王及百濟隆 盟于就利山
山百濟地也 由盟改亂山爲就利山 在只馬縣也

0665 「舊唐書(945)」
麟德二年八月 隆到熊津城 與新羅王法敏刑白馬而盟

0665 「冊府元龜(1013)」
高宗麟德二年八月
開府儀同三司新羅王金法敏 熊津都尉扶餘隆 盟於百濟之熊津城

0665 「新唐書(1060)」 麟德二年 與新羅王會熊津城 刑白馬以盟

0665 「三國史記(1145)」
秋八月 王與勑使劉仁願·熊津都叔扶餘隆 盟于熊津就利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