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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05-19
당나라는 백제 왕조를 멸망시킨 후 백제를 웅진도독부로 재편하고 백제 왕자 부여융을 도독으로 삼아 신라왕 법민과 화해의 맹약를 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장소에 대해서 천지상서지(666)에는 취리산으로 되어 있고 책부원귀(1013)에는 백제의 웅진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당서(945)는 부여융이 웅진성에 이르러 신라왕과 맹약하였다고만 되어 있는데, 책부원귀는 이를 맹약의 장소도 웅진이었던 것으로 인식한 듯합니다.
삼국사기(1145)는 이를 종합한 듯 웅진의 취리산에서 맹약하였다고 하였죠.
천지상서지는 취리산이 지마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지마현은 웅진도독부 노산주의 지모현으로 보입니다.
지마마지라고도 했다는데, 관세음응험기(641⁻)에 백제가 도읍을 옮겼다는 지모밀지인 듯합니다.
왕궁의 유적이 있는 지금의 금마면이 유력합니다.
그렇다면 취리산은 이 왕궁 유적의 북쪽에 있는 미륵산이 어울립니다.
369년에 백제와 왜가 반도 남부를 함께 정벌하고 벽지산 및 고사산에 올라 맹약한 것과 비슷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