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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11-05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후 백제 왕자 부여융과 신라왕 김법민으로 하여금 맹약를 맺게 합니다.
天地瑞祥志(666)는 그 맹약이 只馬縣 就利山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죠.
여기에 나오는 只馬縣은 웅진도독부 노산주의 支牟縣으로 보입니다.
只馬馬知라고도 했는데, 觀世音應驗記(641⁻)에 백제가 도읍을 옮겼다는 枳慕蜜地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只馬縣, 支牟縣, 只馬馬知 그리고 枳慕蜜地는 왕궁의 유적이 있는 지금의 금마 일대가 어울리고 就利山은 이 유적의 북쪽에 있는 미륵산이 어울리죠.
369년에 백제 초고왕과 왜의 사신 천웅장언이 의류촌에서 만나 辟支山과 古沙山에 차례로 올라 맹약한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편, 冊府元龜(1013)에는 부여융과 김법민이 맹약을 맺은 장소를 熊津城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天地瑞祥志의 기록과 모순되죠.
舊唐書(945)에는 당나라로 갔던 부여융이 熊津城에 돌아와 신라왕과 맹약하였다고만 되어 있는데, 舊唐書와 冊府元龜 사이에는 맹약도 그곳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대해석하는 과정이 있었던 듯합니다.
新唐書(1060)도 熊津城에서 맹약이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마찬가지죠.
한편, 三國史記(1145)는 부여융과 김법민의 맹약이 熊津의 就利山에서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唐書와 資治通鑑 등의 기록에 크게 의존하는 三國史記가 그들 기록에 나오지 않는 就利山 이야기를 선택한 것을 보면 그 이야기의 근거가 훨씬 우세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0369 「日本書紀(720)」
千熊長彥與百濟王 至于百濟國登辟支山 盟之
復登古沙山共居磐石上 時百濟王盟之曰

0641⁻ 「觀世音應驗記」 百濟武廣王 遷都枳慕蜜地 新營精舍

0660⁻ 百濟 完山州 金馬渚郡

0664 熊津都督府 魯山州 支牟縣(夲只馬馬知)

0664 「三國史記(1145)」
至麟德元年 復降嚴勑 責不盟誓
即遣人於熊嶺 築壇共相盟㑹 仍於盟處 遂爲兩界

0665 「天地瑞祥志(666)」
大唐麟德二年秋八月 勅使劉仁願 新羅王及百濟隆 盟于就利山
山百濟地也 由盟改亂山爲就利山 在只馬縣也

0665 「舊唐書(945)」
麟德二年八月 隆到熊津城 與新羅王法敏刑白馬而盟

0665 「冊府元龜(1013)」
高宗麟德二年八月
開府儀同三司新羅王金法敏 熊津都尉扶餘隆 盟於百濟之熊津城

0665 「新唐書(1060)」 麟德二年 與新羅王會熊津城 刑白馬以盟

0665 「三國史記(1145)」
秋八月 王與勑使劉仁願·熊津都叔扶餘隆 盟于熊津就利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