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은 여진을 정벌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진은 본디 구고려의 부락으로 개마산 동쪽에 모여 살았다. 동쪽은 대해에 이르는데 산천이 수려하고 토지가 기름져 우리 백성들이 살만하다. 본디 구고려의 소유로 옛 비석의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는 삼국지에 나오는 옥저와 일치합니다.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구려는 대인을 두고 함께 통치하게 하였는데, 그곳의 미녀를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다."
윤관의 군대가 옛 옥저를 정벌하며 파괴한 마을은 135촌에 달했는데, 목을 벤 주민만 3,700명이 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도망가지 못한 어린이와 노인들이었죠.
고려 때도 그랬고 왕씨고려 때도 옥저를 동족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0245 三國志(289) 沃沮
東沃沮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 濵大海而居 其地形東北狹 西南長 可千里 北與挹婁夫餘 南與濊貊接
國小 迫於大國之間 遂臣屬句麗 句麗復置其中大人為使者 使相主領 又使大加統責其租稅 貊布魚鹽海中食物 千里擔負致之 又送其美女以為婢妾 遇之如奴僕
1107 高麗史(1451) 列傳 尹瓘
中軍破高史漢等三十五村 斬三百八十級 虜二百三十人
右軍破廣灘等三十二村 斬二百九十級 虜三百人
左軍破深昆等三十一村 斬九百五十級
瓘軍自大乃巴只 破三十七村 斬二千一百二十級 虜五百人
1108 高麗史(1451) 列傳 尹瓘
女眞 本勾高麗之部落 聚居于盖馬山東
其地方三百里 東至于大海 西北介于盖馬山 南接于長·定二州 山川之秀麗 土地之膏腴 可以居吾民 而本勾高麗之所有也 其古碑遺跡
1109 高麗史(1451)
褭弗等奏曰
不謂去年 大擧而入 殺我耄倪 置九城 使流亡靡所止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