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는 일본 통치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이는 만주나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일본군 위안부로 전락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사실로 짐작할 수 있죠.
그 결과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도 가장 컸는데, 이는 독립유공자수가 가장 많은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군정이 조선총독부의 경찰을 미군정청의 경찰로 그대로 부리자, 이 지역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어 마침내 대구에서 인민봉기가 일어납니다.
봉기는 경부선을 따라 왜관, 구미, 영천 등지로 번졌는데, 경찰들을 죽이고 민주당과 지주들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이 개입하고 타지의 경찰과 우익 폭력단까지 동원되자 봉기는 진압되고 잔당들은 팔공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의 시초가 됩니다.
그리고 4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 지역은 좌익세력 학살의 피바다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