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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10-12
고려에 쫒겨난 것으로 보이는 樂浪王氏가 낙양에 묘지명을 남겨놓았는데, 거기에는 자신들이 箕子의 후손이며 주무왕이 箕子를 朝鮮에 봉했기 때문에 王을 성씨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당서에는 고려를 소개하며 삼국지에 없던 箕子숭배를 기록해 놓았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고려에 통합된 후에도 箕子를 숭배하는 樂浪의 토착 세력은 상당수 잔류했던 듯합니다. 고려사에는 王建이 3대에 걸친 자신의 조상을 추증하였지만 그 선대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대의 기록이 없다고 그 선대가 王氏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죠. 王建이 후당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기록을 보면 箕子가 언급되어 있어 王建이 자신의 정체성을 樂浪에 두었음을 암시합니다. 훗날 만들어진 開城王氏의 王氏源派記에는 樂浪王氏와 유사한 가문의 내력이 들어있습니다. 부여에서 나온 고려의 추모설화가 부여의 동명설화를 닮은 것을 떠올리게 하죠.


0289 「三國志」 高句麗 祭鬼神 又祀靈星社稷

0509 「元願平妻 王氏 墓誌銘」 樂浪 遂城人
樂浪名邦 王氏名宗

0514 「王禎 墓誌銘」 樂浪 遂城人
殷有三人 周訪九疇 只族王家 藉冑鮮侯

0522 「王基 墓誌銘」 樂浪 遂城人
其先出自有殷 周武王剋商 封箕子於朝鮮 子孫因而氏焉

0668⁻ 「舊唐書(945)」 高麗
其俗多淫祀 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0919 「高麗史(1451)」
高麗之先 史闕未詳
「太祖實錄」
卽位二年 追王三代祖考
冊上始祖尊謚曰元德大王 妣爲貞和王后
懿祖爲景康大王 妣爲元昌王后
世祖爲威武大王 妣爲威肅王后

0933 「高麗史(1451)」
唐詔曰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王氏宗族記」 國祖姓王氏

「王氏源派記」
皇帝顓頊 顓頊孫夏禹 夏禹十三孫孔甲
孔甲弟祖明 祖明與劉累共 學擾龍 及孔甲復求龍醢
劉累懼與祖明共 避于東海中至 平壤日土山之原因居焉
受兢祖明之後
箕子東封之初 欲設八條之敎
風土有別 得國之尊者 然後可以行
國人擧受兢命爲士師 敎冑子 化民成俗 賜姓王氏
盖取其所居 日土之土 升其傍點 橫而長之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