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년에 편찬된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민달천황의 손자 중에 백제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봉건시대에는 중앙의 왕족을 지방의 왕으로 앉히는 경우가 흔히 있었으므로 민달천황의 손자도 왜가 백제의 왕으로 앉힌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백제 동성왕이 사씨가 호족으로 있던 매로에 백제 왕족을 매로왕으로 앉힌 사례가 대표적이죠.
왜는 백제의 왕위 교체에 여러 차례 관여한 바 있습니다.
391년에 진사왕이 고려에 패하자 이듬해에 아신왕으로 교체하였고, 405년에 그 아신왕이 죽자 볼모로 데려갔던 왕자 직지를 귀국시켜 왕으로 앉혔으며, 479년에는 삼근왕이 어린 나이에 죽자 역시 왜에 볼모로 가 있던 개로왕의 조카를 귀국시켜 동성왕으로 앉혔고, 660년에 백제 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당나라에 잡혀가자 역시 볼모로 왜에 가 있던 풍을 귀국시켜 부흥운동의 백제왕이 되게 했죠.
그러나 민달천황 이후 백제왕이 된 사람은 혜왕, 법왕, 무왕 그리고 의자왕이 전부인데, 모두 백제 왕족의 혈통이 분명하여 누구도 민달천황의 손자일 가능성이 없습니다.
또 민달천황의 손자 중에 백제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신찬성씨록 밖에 없으므로 이 기록이 오기일 가능성을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죠.
712년에 편찬된 고사기에는 민달천황의 황자에게 전촌왕, 다량왕 등 여러 명의 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촌왕은 훗날 서명천황이 되죠.
그런데 다량왕은 일본말로 たらのみこ인데, 백제왕의 일본말인 くたらのみこ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신찬성씨록에 민달천황의 손자로 나오는 백제왕은 다량왕의 오기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설명이 가장 그럴 듯합니다.
0392 「日本書紀」
百濟辰斯王立之失禮於貴國天皇
故遣紀角宿禰·羽田矢代宿禰·石川宿禰·木菟宿禰 嘖讓其無禮狀
由是 百濟國殺辰斯王以謝之
紀角宿禰等 便立阿花爲王而歸
0405 「日本書紀」
百濟阿花王薨
天皇召直支王謂之曰
汝返於國以嗣位 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
0479 「日本書紀」
百濟文斤王薨
天王 以昆支王五子中 第二末多王 使王其國
仍賜兵器 幷遣筑紫國軍士五百人 衛送於國
是爲東城王
0661 「日本書紀」
皇太子御長津宮
以織冠 授於百濟王子豐璋 復以多臣蔣敷之妹妻之焉
乃遣大山下狹井連檳榔·小山下秦造田來津
率軍五千餘 衛送於本鄕
於是 豐璋入國之時 福信迎來 稽首奉國朝政 皆悉委焉
「百濟 東城王 票文(490)」
建威將軍餘歷 忠款有素 文武烈顯 今假行龍驤將軍 邁盧王
「古事記(712)」
此天皇之御子等 幷十七王之中 日子人太子
娶庶妹田村王亦名糠代比賣命 生御子 坐岡本宮治天下之天皇
次中津王 次多良王(たらのみこ)
「新撰姓氏録(815)」
大原真人 出自謚敏達孫百済王(くたらのみこ)也
島根真人 大原真人同祖 百済親王之後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