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1408년 4월 16일.
명나라에서 칙사 황엄 등이 오자, 무대를 만들어 의식을 거행하고 공연을 베풀었으며, 태종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모화루에서 이들을 영접하였다. 사신이 경복궁에 이르러 칙서를 선포하자, 태종은 칙서에 절하고 서쪽 계단으로 올라가 사신 앞에 꿇어앉았다. 황엄이 영락제의 말을 전하기를, "네가 조선에 가서 국왕에게 말하여 좋은 여자 몇 명을 뽑아서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하였다. 태종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였다.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해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세종실록 1424년 7월 8일.
영락제가 원민생에게 이르기를, ‘조선의 태종은 지성으로 나를 섬겨, 건어에 이르기까지 진헌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지금 세종은 지성으로 나를 섬기지 아니하여, 전날에 태종이 부리던 내시를 달라고 하였는데도 다른 내시를 구해서 보냈다. 짐은 늙었다. 입맛이 없으니 밴댕이와 붉은 새우젓과 문어 같은 것을 가져다 올리게 하라.' 하였다. 내시 해수가 황제 옆에 서 있다가 원민생에게 이르기를, ‘좋은 처녀 2명을 진헌하라.’ 하니, 황제가 기뻐서 크게 웃으면서, ‘20세 이상 30세 이하로, 음식 만들고 술 빚는 데 능숙한 시녀 오륙명도 아울러 뽑아 오라.’ 하고, 원민생에게 은 1정과 채단 3필을 하사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세종대왕은, "그 말은 처녀를 얻고자 하여 했던 말이었더냐." 하며 진헌색을 설치하고 혼인을 금지시켰다.
세종실록 1424년 10월 17일.
영락제가 죽자, 궁인으로 순장된 자가 30여 명이었다. 죽는 날 모두 뜰에서 음식을 먹이고, 다 먹자, 함께 마루에 끌어 올려지니, 곡성이 전각을 진동시켰다. 마루 위에 나무로 만든 작은 평상을 놓아 그 위에 서게 하고, 그 위에 올가미를 만들어 머리를 그 속에 넣게 하였는데, 평상을 떼어 버리니 모두 목이 매어져 죽게 되었다. 한씨가 죽을 때 김흑에게 이르기를, "엄마 나는 간다, 엄마 나는 간다."고 하였는데, 말을 마치기 전에, 곁에 있던 환관이 평상을 빼내므로 최씨와 함께 죽었다.
「世宗實錄」
及帝之崩 宮人殉葬者 三十餘人 當死之日 皆餉之於庭 餉輟 俱引升堂 哭聲震殿閣 堂上置木小床 使立其上 掛繩圍於其上 以頭納其中 遂去其床 皆雉經而死 韓氏臨死 顧謂金黑曰 娘吾去 娘吾去 語未竟 旁有宦者去床 乃與崔氏俱死
세종실록 1427년 5월 1일.
처녀 한씨는 한영정의 막내딸이다. 맏딸은 영락제의 궁에 뽑혀 들어갔다가, 영락제가 죽자 순장당했는데, 창성과 윤봉이 또 막내딸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아뢰었으므로, 와서 뽑아 가게 되었다. 병이 났는데, 그 오라비 한확이 약을 주니, 한씨가 먹지 않고 말하기를, "누이 하나를 팔아서 부귀가 이미 극진한데, 무엇을 위하여 약을 쓰려 하오?" 라고 하며 칼로 제 침구를 찢고, 모아두었던 재물을 모두 친척들에게 나눠 주었다. 침구는 나중에 시집갈 때를 위하여 준비했던 것이었다.
處女韓氏 永矴之季女也 長女選入太宗皇帝宮 及帝崩殉焉 昌盛 尹鳳又奏季女貌美 故來採之 及有疾 兄確饋藥 韓氏不服曰 賣一妹 富貴已極 何用藥爲 以刀裂其寢席 盡散臧獲家財於親戚 寢席 將嫁時所備也
세종실록 1427년 7월 18일.
세종대왕의 중궁이 경회루에 나가, 명나라 선덕제에게 바쳐질 처녀 7인을 불러, 전별연을 베풀었는데, 처녀의 어머니와 친족들도 또한 참석하였다. 요리하는 계집종 10인과 몸종 16인은, 루 아래에서 음식을 먹였다. 성씨와 차씨에게 따르는 몸종은 각기 3인이고 나머지는 각기 2인이었다. 밤에 날씨가 맑고 고요한데, 슬피 우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니, 이를 듣는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종실록 1427년 7월 20일.
세 사신이 궁궐로 들어오니, 세종대왕이 맞이하여, 근정전의 뜰에 쳐진, 임시 장막으로 함께 들어가, 차를 마셨다. 7명의 처녀들이 상림원으로부터 근정전으로 들어와, 덮개가 있는 가마에 나누어 들어갔는데, 성씨만 한 가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두 사람이 한 가마를 탔다. 사신이 직접 자물쇠를 채우고, 요리하는 계집종과 몸종도 모두 말을 탔다. 건춘문에서 길을 떠나니, 그들의 부모와 친척들이 거리를 막아 울면서 보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또한 모두 눈물을 흘렸다.
세종실록 1427년 7월 21일.
세종대왕이 말하기를, "어제 명나라에 바쳐지는 처녀들이 갈 적에, 어미와 자식이 서로 이별하게 되니, 그 원통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본국의 이해관계만 얽힌 것이 아니라 외국과 관계된 것이므로 조정의 신하들은 논쟁을 벌이지 말고 명령에 따르기만 하라. 만약 이 일이 본국의 이해관계만 얽힌 것이었다면 부득이하게 황제께 아뢰었을 것이다."고 하였다.
上曰 昨日處女之行 母子相離 其爲冤慟 不容說也 然此事非本國利害所關 且外國 非若廷臣之比 不得諫諍 唯令是從而已 若事關本國利害 則不得已奏達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