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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5-10-18
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는 요양에 요동도사를 설치하고 원나라가 통치했던 동북 지역을 이곳에 소속시키기 시작합니다. 철령 이북도 원나라가 통치했던 쌍성총관부였는데, 원나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 왕고가 차지하고 있었죠. 명나라는 이곳에도 철령위를 설치하여 요동도사에 소속시키겠다며 왕씨고려에 통보해 옵니다.
이에 왕고의 우왕은 철령 이북이 동해안 여러 주를 거쳐 공험진에 이르기까지 원래 왕고의 땅이었다며 항의합니다. 그러나 우왕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명나라는 철령위 설치를 강행하여 1388년 3월에 두 명의 지휘와 천여 명의 군사들이 압록강 남쪽의 강계를 지나갑니다. 강계를 지나 황초령을 넘으면 바로 철령 이북이죠. 그러자 분노한 우왕은 다음달 18일에 이성계로 하여금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요동을 치게 합니다.
한편, 기록에는 이 해에 명나라가 지금의 철령시에서 500리 동남쪽에 있는 왕고와의 경계에 철령위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강계를 지나왔던 명나라의 관원들이, 우왕의 출병에 놀라, 왔던 길을 되돌아가 압록강을 건넌 뒤, 주저앉았겠죠. 그런데 우왕의 출병으로 명나라가 철령 이북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성계의 반란은 명분을 잃게 됩니다. 이씨왕조가 펴낸 사서에는 우왕에 대한 인신공격만 가득하죠.


「明史」
以鐵嶺北 東西之地 舊屬開元
其土著軍民女直韃靼高麗人等 遼東統之

「高麗史」
切照鐵嶺迆北
歷文高和定咸等諸州 以至公嶮鎭 自來係是本國之地

「高麗史」
遼東都司遣指揮二人 以兵千餘 來至江界 將立鐵嶺衛
大明後軍都督府 來告立鐵嶺衛
寡人欲攻遼陽 卿等宜盡力
左右軍發平壤 衆號十萬

「明一統志」
鐵嶺衞 在都司城北 二百四十里
古有鐵嶺城 在今衞治 東南五百里 接髙麗界
洪武二十一年 置衞於彼
二十六年 徙今治 即遼金時 嚚州故城也

「高麗史」
1388 寡人欲攻遼陽 卿等宜盡力 左右軍發平壤 衆號十萬

「明史」
1388 鐵嶺衛 以古鐵嶺城置
1392 成桂 請更國號 帝命仍古號曰朝鮮
1393 鐵嶺衛 遷於古嚚州之地 即今治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