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설화
by Silla on 2022-04-23
단군설화의 뿌리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추정을 할 수 있을 뿐인데, 왕검전설을 언급한 삼국사기의 기록과 위만조선 건국을 기록한 사기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하나의 가능성이 생긴다. 
삼국사기에는 ‘평양이 본래 선인 왕검이 살던 곳인데 어떤 기록에는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王之都王險)고 한다’고 되어 있고 사기에는 ‘위만이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王之都王險)'고 되어 있다. 두 기록에서 王之都王險이 일치하고 있는데 이 점은 왕검전설이 위만조선의 건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남겨준다. 그렇다면 王儉 또한 王險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설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554년에 편찬된 위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고 고기는 지금 전해 내려오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삼국사기에 왕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전설이 분명히 있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동안 살이 덧붙여지고 내용이 변형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삼국유사(1281)의 단군왕검도 삼국사기(1145)의 선인왕검과 달라 보이고 제왕운기(1287)와 묘향산지(1630년 이후)의 단군설화도 삼국유사의 그것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는 곰이 호랑이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후 환웅과 결혼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되어 있지만, 제왕운기에는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으로 변하게 한 후 단수신과 혼인시켜 단군을 낳게 했다고 되어 있다. 묘향산지에는 환웅이 흰 호랑이와 결혼해서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설화가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삼국유사의 이야기에만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더욱이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가지고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 경쟁해서 전자가 승리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단군설화로부터 한민족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곰을 숭배하는 풍습은 퉁구스의 여러 민족에게서 나타나고 한민족의 정서는 견훤설화나 왕건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호랑이와 보다 친숙하기 때문이다. 곰과 사람이 혼인하는 이야기는 퉁구스 여러 부족의 설화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단군설화에는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그런데 그 인물들 중에는 다른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 많다.
제석이라고도 하는 환인(桓因謂帝釋)은 불교경전인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석제환인(釋提桓因)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다. 석제환인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데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한다. 제왕운기에는 환인위제석(桓因謂帝釋) 대신 상제환인(上帝桓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상제는 고대 중국의 최고신이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저자가 각각 불교와 유교에 기반을 두고 있에 帝釋과 上帝의 차이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풍백과 우사도 중국설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산해경에는 황제와 치우가 탁록의 벌판에서 싸울 때 치우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동원하여 크게 비바람을 일으키자 황제가 발(魃)이라는 천녀를 불러 비바람을 그치게 한 후 치우를 잡아 죽였다고 되어 있다.
운사 또한 춘추좌씨전을 비롯한 중국의 고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630년에 편찬된 상촌집에는 요순시대 이전에 하늘에 관한 일을 다루는 용사(龍師), 수사(水師), 화사(火師), 운사(雲師) 그리고 조사(鳥師)가 있었다고 나와 있다. 운사는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왕고시대의 이색이 지은 시에 '雲師風伯亦何心(구름 귀신 바람 귀신 또한 무슨 맘이던고)'라는 구절을 들 수 있다.
주나라의 호왕(무왕)이나 기자는 물론 논어를 비롯한 중국의 고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기전 91년에 편찬된 사기에는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고 되어 있다.
요컨대, 단군설화는 여러 가지 역사기록과 설화가 섞여 만들어진 이야기다.
일본의 건국설화와 단군설화는 하늘의 자손이 내려와 땅 위의 왕이 된다는 공통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밖에도 두 설화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1) 천조대신은 천진언언화경경저존에게 곡옥, 팔지경 그리고 초치검 세 가지 보물을 주어 내려 보내고 환인은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보낸다.
(2) 천조대신은 5부의 신으로 하여금 천진언언화경경저존을 모시고 내려가게 하고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온다.
(3) 천진언언화경경저존은 고천수봉으로 내려오고 환웅은 태백산으로 내려온다.

두 이야기는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물론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설화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두 설화가 기록된 시기가 500년 이상 차이가 나고 단군설화는 기록되기 전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없기 때문에 단군설화가 일본의 건국설화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