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때 가죽옷을 싣고 갈석을 돌아 황하로 들어오는 조이가 있었는데, 주나라때는 재자를 생산하는 양이로 알려졌고, 전국시대에는 무늬가 있는 가죽을 생산하는 조선으로 알려집니다.
이 조선은 연나라의 침공을 받아 복속되는데, 진나라때는 요동 외요에 소속되었다가, 한나라때는 한나라의 영토에서 빠집니다.
이때 연나라의 위만이 건너와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죠.
그러나 그의 손자에 이르러 다시 한나라가 멸망시키고 낙랑군을 설치합니다.
낙랑군은 400여년간 지속하다 고려에 병합되죠.
한편,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환도에 도읍한 고려가 영성과 사직에 제사를 지냈다고 되어 있는데, 각각 945년과 1060년에 편찬된 신구 당서에는 낙랑을 병합하고 그곳으로 도읍을 옮긴 고려가 영성신, 일신, 가한신 그리고 기자신을 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르는 긴 역사의 기간 동안 단군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죠.
오직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는 위만만, 역시 왕이 되어 왕험에 도읍하였다는 왕검과 연결될 수 있을 뿐입니다.
중국의 기록들이라 조선 내부의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국조 단군에 대한 이야기가 청동기 시대부터 전해내려오고 있었다면 적어도 평양에 도읍한 낙랑고려의 풍습을 소개할 때는 기자와 함께 언급되었어야 마땅하죠.
그러나 그런 것이 없는 걸로 봐서 단군설화는 낙랑고려 이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史記」
五帝本紀 北山戎發息慎 東長鳥夷
夏本紀 鳥夷皮服夾右碣石入于海
「逸周書」
良夷在子 在子幣身人首脂其腹炙之藿則鳴曰在子
「管子」 海內玉幣有七筴 發朝鮮之文皮
「史記」 燕東有朝鮮遼東
「鹽鐵論」 度遼東而攻朝鮮
「史記」
自始全燕時 嘗略屬真番朝鮮 為置吏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屬燕
燕王盧綰反入匈奴 滿亡命聚黨千餘人
稍役屬真番朝鮮蠻夷及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
「史記」 天子募罪人擊朝鮮
「漢書」 遂定朝鮮為真番臨屯樂浪玄菟四郡
「三國志」 高句麗 祭鬼神 又祀靈星社稷
「三國史記」 高句麗 移都平壤
「唐書」 高麗 其俗多淫祀 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