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는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 변진한 24국의 하나인 구야로 처음 등장합니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는 가라와 남가라로 갈라져 나오는데, 이는 1145년에 편찬된 삼국사기의 대가야 및 남가야에 해당되죠.
삼국사기는 대가야의 시조가 내진주지라고도 불린 이진아시왕이라고 했는데, 이는 최치원이 쓴 석리정전에 대가야의 시조가 뇌질주일이라고도 불린 이진아시왕이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석리정전에는 금관국의 시조 수로왕도 이진아시왕의 동생으로 가야산에서 갈라져나왔다고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수로가 어디 사람인지 알지 못하며 42년에 구봉에 올라 가락의 아홉 마을을 보고 나라를 열고 이름을 가야라고 했다가 뒤에 금관국으로 고쳤다고 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1075년에서 1085년 사이에 씌어진 가락국기에 수로가 하늘에서 구지로 내려오자 아홉 간이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 하였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가락국기의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천진언언화경경저존이 고천수봉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일본서기의 건국설화와 비슷하죠.
남가라의 유래에 대해 석리정전과 가락국기의 이야기가 어긋나는 것은 어느 한 쪽이 후대에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가락국기와 일본서기의 이야기가 비슷한 것은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기록의 시기는 일본서기가 가장 빠르고 석리정전이 그 다음이며 가락국기가 가장 늦으므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가야산 아래에 세워진 가라는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 하구에도 거점을 만들었는데, 이 남쪽 부분이 점차 분리되어 남가라로 구별되다 국호를 금관국으로 바꾸고 일본 건국설화의 영향을 받은 독자적인 건국설화까지 만들었다.'
三國志(0289)
弁辰狗邪國·弁辰安邪國·斯盧國
弁辰韓合二十四國
0369 日本書紀(0720)
平定比自㶱·南加羅·㖨國·安羅·多羅·卓淳·加羅 七國
日本書紀(0720)
高皇產靈尊 以眞床追衾 覆於皇孫天津彥彥火瓊瓊杵尊使降之
天降於日向襲之高千穗峯矣
其地有一人 自號事勝國勝長狹
皇孫問曰 國在耶以不
對曰 此焉有國 請任意遊之
故皇孫就而留住
釋利貞傳(0900±)
按崔致遠釋利貞傳云
伽倻山神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訶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 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則惱窒朱日爲伊珍阿豉王之別稱 靑裔爲首露王之別稱
駕洛國記(1075~1085)
越有九干者所居北龜㫖
衆庻二三百人集㑹於此
有如人音隠其形而發其音曰 此有人否
九干等云 吾徒在
又曰 吾所在為何
對云 龜旨也
又曰 皇天所以命我者御是處惟新家邦為君后 為兹故降矣
始現故諱首露
國稱大駕洛又稱伽耶國
三國史記(1145)
髙靈郡 夲大加耶國
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内珍朱智) 至道設智王 凢十六世 五百二十年
金庾信 王京人也 十二世祖首露 不知何許人也
漢建武十八年壬寅
登龜峰 望駕洛九村 遂至其地開國 號曰加耶 後攺爲金官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