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백제전.
472년에 백제왕 여경이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였다.
신이 동쪽 끝에 나라를 세워 승냥이와 이리들에게 길이 막히니, 비록 대대로 신령하신 교화를 받았으나 번신의 예를 받들 길이 없었습니다. 삼가 사서한 관군장군 부마도위 불사후 장사 여례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 장무 등을 보내어 파도에 배를 던져 망망한 바닷길을 더듬게 하였습니다.
만일 천자의 인자와 간절한 긍휼이 멀리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면 급히 장수 한 사람을 보내어 신의 나라를 구원하여 주십시요.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굿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신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선대에는 우의를 매우 돈독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선조인 쇠가 이웃간의 우호를 가볍게 깨뜨리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신의 국경을 짓밟았습니다. 그리하여 신의 선조인 수가 군사를 정돈하고 번개처럼 달려가서 기회를 타 돌풍처럼 공격하여, 화살과 돌이 오고 간지 잠깐만에 쇠의 머리를 베어 높이 매달으니, 그 이후부터는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신의 나라 서쪽 국경에 있는 소석산의 북쪽 바다에서 10여구의 시체를 발견함과 아울러 옷과 기물·안장·굴레 등을 얻었사온데, 살펴보니 고려의 물건들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들으니 이는 폐하의 사신이 신의 나라로 오는 것을 뱀처럼 흉악한 것들이 길을 막고 바다에 침몰시킨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렇게 하였는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깊이 분노를 느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