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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4-13
광개토왕릉비에는 396년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개토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였다. 그러자 백제 아신왕이 남녀 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항복하고 광개토왕 앞에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영원히 고려왕의 종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광개토왕은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뒤늦게나마 복종해 온 마음을 기특히 여겼다. 그래서 백제의 58성 700촌을 얻고 아신왕의 아우와 대신 열 명을 데리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는 이후에도 고려와 백제가 전쟁을 계속하는 것으로 나와 이상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도 광개토왕릉비에서 찾을 수 있죠.
백제가 왜와 화통하고 항복을 번복했다는 겁니다.
한편, 백제가 바쳤던 58성 700촌은 삼국지에 나오는 마한 54국에 비견될 정도로 규모가 커 보이는데, 이것을 바친 후에도 고려와 백제의 국경은 크게 바뀐 거 같지 않아 이것도 이상합니다.
광개토왕릉비에는 왜가 404년에 지금의 황해도에 해당하는 고려의 대방 지역을 침공해 왔다고 되어 있죠.
이렇게 국경이 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항복을 번복할 때 58성 700촌을 주기로 한 약속도 파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대응시킬 수 있는 일본서기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백제 아신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왜가 백제의 침미다례, 현남, 지침, 곡나, 그리고 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백제 아신왕은 397년에 태자 전지를 왜에 보내 우호를 닦게 하였다.

여기서 왜가 빼앗은 땅은 금강 유역과 그 남쪽인데 이 규모는 고려가 빼앗았던 58성 700촌에 필적할 듯합니다.
이처럼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396년의 사건은 왜를 빼고 설명이 되지 않으며 그 내용은 왜가 한국을 놓고 고려와 경쟁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 학자들이 말하기 꺼려하는 것입니다.


「廣開土王陵碑」
以六年丙申 王躬率□軍 討伐殘國
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百殘違誓與倭和通

十四年
而倭不軌侵入帶方界□□□□□石城□連船□□□
王躬率□□從平穰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斬煞無數

「日本書紀」 百濟記云
阿花王立無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