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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4-30
일본서기 554년 1월.
백제가 중부의 목리시덕문차, 전부의 시덕 왈좌분옥 등을 축자에 보내 내신과 좌백련 등에게 묻기를, “덕솔 차주와 간솔 색돈 등이 지난 해 윤달 4일에 와서, ‘신 등은 내년 정월에 도착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은 하였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오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또한 군대의 수는 얼마입니까. 대강이나마 듣고 미리 군영의 성벽을 쌓고자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또, “들은 바는, 황공하신 천황의 조서를 받들어 축자에 가서 보내 줄 군대를 살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올해의 싸움은 전에 없이 위태로우니, 보내주실 군대를 정월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내신이 명을 받들어, “바로 구원군 1천, 말 1백 필, 배 40척을 보내도록 하겠다.”라고 대답하였다.

일본서기 554년 2월.
백제가 하부 간솔 장군 삼귀와 상부 나솔 물부오 등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리고 덕솔 동성자막고를 바쳐, 전에 번을 섰던 나솔 동성자언을 교대하고, 오경박사 왕류귀로 고덕 마정안을 대신하고, 승려 담혜 등 9인으로, 승려 도침 등 7인을 교대하였다. 따로 명령을 받들어 역박사 시덕 왕도량, 역박사 고덕 왕보손, 의박사 나솔 왕유릉타, 채약사 시덕 반량풍과 고덕 정유타, 악인 시덕 삼근, 계덕 기마차, 계덕 진노 그리고 대덕 진타를 바쳤는데 모두 청에 따라 교대하였다.

일본서기 554년 3월.
백제의 사신 중부 목리시덕문차 등이 돌아갔다.

일본서기 554년 5월.
내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에 이르렀다.




일본서기 554년 12월.
백제가 하부의 간솔 문사간노를 보내 표를 올려, “백제왕 신 명과 안라에 있는 왜신들, 임나 여러 나라의 한기들은 아룁니다. 신라가 무도하여 천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려와 마음을 함께 하여, 바다 북쪽의 관가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신들이 함께 의논한 끝에 유지신 등을 보내 군사를 청해 신라를 정벌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천황께서 유지신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게 하셔서 6월에 왔으므로 신들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하여 12월 9일에 신라를 공격하도록 보냈는데, 그 전에 신이 동방령 물부막기무련을 보내 자기 방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산성을 공격하도록 하였었습니다. 유지신이 불화살을 잘 쏘는 백성 죽사 물부막기위사기를 데리고 왔는데, 천황 위령의 도움으로, 이 달 9일 유시에 성을 불태우고 빼앗았으므로, 한 사람의 사신을 보내 배를 달려 아룁니다.”라고 하였다.

별도로 아뢰기를, “만약 신라뿐이라면 유지신이 데리고 온 군사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려가 신라와 마음을 함께 하고 힘을 합하였으므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구주에 있는 군사들을 빨리 보내 와서 신의 나라를 돕고 또 임나를 돕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또, “신이 따로 군사 만 명을 보내 임나를 돕겠습니다. 아울러 아룁니다. 이번 일이 매우 급하여 한 척의 배를 보내 아뢰며, 단지 좋은 비단 2필, 탑등 1령, 도끼 300구, 사로잡은 성의 백성 남자 둘과 여자 다섯을 바칩니다. 적어서 송구합니다”라 아뢰었다.




일본서기 554년.
여창이 신라를 정벌할 것을 계획하자, 원로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그러자 여창이, “늙었구료. 어찌 겁내시오. 우리는 대국을 섬기고 있는데 겁날 것이 있겠소?”라고 하고 결국에는 신라에 들어가 구타모라에 보루를 쌓았다.
그 아버지 명왕은 여창이 오랫동안 행군을 하느라 제대로 먹고 자지 못한 것을 걱정하였다. 아비의 사랑이 부족하면 아들의 효도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몸소 가서 위로하였다. 신라는 명왕이 직접 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라 안의 모든 군대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 때 신라는 좌지촌의 사마노 고도에게, 고도는 곡지라고도 한다, “고도는 천한 노비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다. 천한 노비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해서 후세 사람들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비의 손에 줄 수는 없다.”라고 하니 고도가, “우리나라에서는 맹세를 어기면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노비의 손에 죽습니다.”라고 하였다. 다른 책에는, “명왕이 상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곡지에게 풀어주며 베게 했다.”고 하였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기를,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보아도 구차하게 살 수는 없다.”라고 하고 머리를 내밀어 베도록 하였다.

고도는 머리를 베어 구덩이에 묻었다. 다른 책에는, “신라가 명왕의 머리뼈만 남겨두고 나머지 뼈를 백제에 예를 갖춰 보냈다. 지금 신라왕이 명왕의 뼈를 북청 계단 아래에 묻었는데 이 관청을 도당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이때 여창도 포위를 당했는데, 빠져나올 수 없었고 사졸들도 놀라 어찌 할 줄 몰랐다. 축자국조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는데 이때 나아가 활을 당겨 신라의 말탄 군사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을 쏘아 떨어뜨렸다.
쏜 화살이 날카로워, 타고 있던 안장의 앞뒤를 가로지른 나무를 뚫었고, 입고 있던 갑옷의 옷깃을 맞추었다. 계속 화살을 비오듯 날려보내자, 포위한 군대가 물러났다. 이로 인해 여창과 여러 장수들이 샛길로 도망쳐서 돌아왔다. 여창은 국조가 활로 포위 군대를 물리친 것을 칭찬하고 안교군이라 높여 불렀다. 안교는 우리 말로 쿠로지라 한다.




이 때 신라 장수들이 백제가 지쳤다는 것을 알고 멸망시켜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한 장수가, “안된다. 왜왕이 임나와 관련해서 여러 번 우리나라를 책망하였다. 하물며 다시 백제관가를 멸망시킨다면 반드시 후환을 부를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일본서기 555년 2월.
백제 왕자 여창이 왕자 혜, 위덕왕의 동생이다, 를 보내어, “성명왕이 적에게 살해당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작년년에 신라에게 살해당했다. 그래서 지금 그것을 아뢴 것이다.
천황이 듣고 상심하고 슬퍼하였다. 바로 사자를 보내 나루에서 맞이하고 위문하였다. 이때 허세신이 왕자 혜에게, “이곳에 머물겠습니까? 아니면 본국으로 돌아가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혜가, “천황의 덕에 의지하여 돌아가신 부왕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만약 불쌍히 여겨, 병기를 많이 주신다면 치욕을 씻고 원수를 갚고 싶습니다. 신이 돌아갈지 머무를지는 오직 명에 따를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일본서기 556년 1월.
백제의 왕자 혜가 돌아가기를 청하였다. 그래서 병기와 좋은 말을 매우 많이 주었다. 또 상으로 물품을 여러차례 하사하여 사람들이 감탄하였다. 이때 아배신, 좌백련 그리고 파마직을 보내어, 축자국의 수군을 이끌고 그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호위하도록 하였다. 별도로 축자화군, 백제본기에는 축자군의 아들 화중군의 아우라고 한다, 을 파견하여 용감한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미테, 미테는 나루의 이름이다, 까지 호위하도록 하고 뱃길의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일본서기 557년 3월.
백제 왕자 여창이 왕위를 이었다. 이 사람이 위덕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