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1115년 8월.
요나라가 장차 여진을 정벌하려고 사신을 보내 군사를 요청하였다. 재추와 시신, 도병마판관과 여러 위의 대장군 이상을 불러 의논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찬성하였으나, 오직 위위소경 척준경, 예부낭중 김부일, 호부원외랑 한충, 우사간 김부식, 우정언 민수만이, “1107년과 1108년의 군사동원 이후 군과 백성이 겨우 어깨를 쉬고 있었는데, 지금 다른 나라를 위해 군사를 보내면 스스로 화근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장래의 일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신중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예종이 두세 차례 물었으나, 끝내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고려사 1116년 4월.
중서문하성에서, “요나라가 여진의 침공을 받아 매우 위급한 상황이니, 요나라의 연호를 써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공사의 모든 문서에 천경 연호를 삭제하고, 간지만 사용해야 합니다.” 라고 건의하자 예종이 승인했다.
고려사 1117년 3월.
금나라 군주 아골타가 아지 등 5인을 보내 이르기를, “형인 대여진금국 황제는 아우인 고려국왕에게 문서를 보내오. 우리는 조부 때부터 한쪽 변방에 끼어 있으면서 거란을 대국이라 하고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하며 조심스레 섬겨왔소. 그런데 거란이 무도하게 우리 강역을 유린하고 우리 인민을 노예로 삼았으며 명분도 없이 여러 차례 군사를 일으켜왔었소. 우리는 부득이하게 그에 항거하였는데 하늘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섬멸하게 되었소. 왕은 우리와의 화친을 허락하고 형제의 관계를 맺어서 대대로 무궁한 우호관계를 이루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아울러 좋은 말 1필도 보냈다.
고려사 1126년 3월.
관리들을 소집하여 금나라를 섬기는 일을 의논하게 하니, 모두 안된다고 하였다. 오직 이자겸과 척준경만이, “금나라가 작았을 때는 요나라와 우리나라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급격하게 세력을 일으켜 요나라와 송나라를 멸망시켰으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병력도 강성하여 나날이 강대해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와는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 섬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선왕의 도리니, 사신을 보내 먼저 예를 갖추고 위문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니, 인종이 그 말을 따랐다.
고려사 1126년 4월.
정응문과 이후를 금(金)에 보내 본국을 신하라고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표문을 올렸다. “저는 하찮은 작은 지방을 다스리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황제폐하의 비상한 위업을 듣고, 이미 오랫동안 존경을 바쳐 왔으니, 넉넉지 못한 예물이나마 충성의 뜻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변변치 못한 공물을 바치는 것이 부끄럽긴 하오나, 크신 은덕으로 받아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고려사 1126년 7월.
송(趙宋)에서 합문지후인 후장과 귀중부 등 60여 명을 보내왔다. "천하의 군사를 동원해 추악한 오랑캐들의 죄를 묻고자 하니 고려국왕은 군대를 지휘해 우리 군대와 협력해 적에게 천벌을 내리도록 하라." 후장이 송(趙宋)으로 돌아가는 편에 왕이 다음과 같은 표문을 전달하게 했다. "저희나라는 본래 강성한 나라가 아닐 뿐더러, ... 상국의 군사가 적을 제압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적으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