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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6-05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은 유물은 절대 평가도 중요하지만 상대 평가도 중요하다며 소박한 낙랑의 박산로와 화려한 백제출토 박산로를 비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예술품에나 적용할 잣대고 유물은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죠.
백제출토 박산로를 낙랑 박산로 대신 한나라의 금동반룡주작박산로와 비교해 보면, 그 조형의 뿌리가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한나라에 이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백제에서는 이 박산로와 전후로 연결되는 향로가 전혀 출토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령왕릉처럼 남조에서 들여온 것일 가능성이 높죠.
갑툭튀 기록은 오기를 의심해 보아야 하고 갑툭튀 유물은 수입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홍준은, 고려의 벽화가 초상화 중심에서 생활도 중심으로, 생활도 중심에서 다시 사신도 중심으로 변했다며, 이는 죽음을 대하는 고려인의 문화가 변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벽화 문화는 한나라에서 번성했었고 고려 벽화에 나오는 소재도 초기부터 후기까지 대부분 한나라 벽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이후 만들어진 고려 벽화의 소재 변화가 큰 의미가 있을까요?
그리고 고려 벽화와 동시대에 북조에서도 벽화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렇다면 고려의 벽화만 따로 떼어낼 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흐름에서 고려 벽화를 파악하는 게 시야를 더 넓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