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년 정월 25일에 돌아와 월주에 도착하였다.
4월 1일에 월주에서 출발하여 동을 향해서 갔다.
7일에 정안산 남쪽에 도착하였다.
8일 동틀 무렵에 서남풍을 타고 대해로 배를 띄웠다. 해상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여 매우 고생하였다.
8박 9일 만에 겨우 탐라도에 도착하였다. 섬사람인 왕자 아파기 등 9명을 불러 위로하고 함께 객선에 태워 천황의 조정에 바치려 생각하였다.
5월 23일에 조창의 조정에 이 사람들을 바쳤다. 탐라의 입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지흥의 시종 동한초직족도의 참소로 당 조정으로부터 은혜로운 칙을 받지 못하였다. 사신들의 원망이 상천의 신에게 통하여 족도는 벼락을 맞아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대왜 하늘의 앙갚음은 빠르기도 하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辛酉年正月廿五日 還到越州
四月一日 從越州上路 東歸
七日 行到檉岸山明
以八日鷄鳴之時 順西南風 放船大海 海中迷途 漂蕩辛苦
九日八夜 僅到耽羅之嶋 便卽招慰嶋人王子阿伎等九人 同載客船 擬獻帝朝
五月廿三日 奉進朝倉之朝 耽羅入朝 始於此時 又 爲智興傔人東漢草直足嶋 所讒 使人等不蒙寵命 使人等怨 徹于上天之神 震死足嶋 時人稱曰 大倭天報之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