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사문 도현의 일본세기에는, “7월에 춘추지가 대장군 소정방의 손을 빌려 백제를 협공하여 멸망시켰다”고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백제가 스스로 망하였다. 임금의 대부인이 요사스럽고 간사한 여자로, 무도하여 마음대로 국가의 권력을 빼앗고 훌륭하고 어진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불렀다.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그 주석에, “신라의 춘추지는 내신 개금에게 청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에 사신으로 가서 자기나라 풍속의 의관을 버리고 천자에게 따를 것을 청하여, 이웃나라에 화를 끼치고 그 의도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이길련박덕의 문서에 “경신년 8월 백제를 이미 평정한 후 9월 12일 본국에서 사신들을 풀어주었다. 19일에 서경으로부터 출발하였다. 10월 16일 동경에 돌아와 비로소 아이마 등 5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11월 1일에 장군 소정방 등이 사로잡은 백제왕 이하 태자 융 등 여러 왕자 13명, 대좌평 사택천복·국변성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을 조당에 바쳤다. 급히 인도하여 천자에게 나아가니, 천자는 은혜로운 칙명으로 보자마자 풀어주었다. 19일에 수고한 사람들에게 하사하였다. 24일에 동경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하였다.
고구려 승려 도현(道顯;다우켄)주 004의 일본세기(日本世記) 주 005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7월에 운운. 춘추지(春秋智) 주 006가 대장군 소정방(蘇定方) 주 007의 도움을 얻어 백제를 협공하여 멸망시켰다. 혹은 백제는 자멸하였다. 왕의 대부인주 008이 요사스럽고 무도하여 국정주 009을 좌우하고 현명하고 어진 신하를 주살주 010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화를 초래하였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주 011. 그 주주 0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라의 춘추지가 내신주 013 개금(蓋金) 주 014에게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자주 015, 다시 당에 사신을 파견하여주 016 자국에서 사용하던 의관을 버리고 천자에게 아첨하여 이웃 나라에 화를 미치게 함으로써 그 뜻주 017을 이루었다. 이길련박덕서 주 018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신년주 019 8월에 백제가 평정되고 난 뒤인 9월 12일에 객인주 020의 귀국을 허가하였다. 19일에 서경주 021을 출발하였다. 10월 16일에 동경주 022에 도착하여 비로소 아리마(阿利麻;아리마)주 023 등 다섯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11월 1일에 장군 소정방 등에게 잡힌 백제의 왕주 024 이하 태자 융(隆)주 025 등 여러 왕자 13명, 대좌평주 026 사택천복(沙宅千福), 국변성(國辨成) 주 027 이하 37명, 모두 50여 명주 028을 조정에 바쳤다. 곧 천자 앞에 끌려갔다. 천자는 은칙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풀어주었다. 19일에 노고를 치하하고 위로하였다. 24일에 동경을 출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