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10월 百濟의 佐平 鬼室福信이 佐平 貴智 등을 보냈는데, 와서 唐의 포로 100여 명을 바쳤으니, 지금의 美濃國 不破·片縣 2郡의 唐人들이다. 또 군대를 빌고 구원을 청했다. 아울러 王子 餘豐璋註 001 어떤 책에는 佐平貴智·達率正珍이라 했다을 청하여 “唐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벌레 같은 적을 거느리고 와서 우리 영토를 흔들어 우리의 사직을 전복시키고 우리 임금과 신하를 포로로 하였다百濟王 義慈, 그 妻 恩古, 그 아들 隆 등, 그 신하 佐平千福, 國辨成, 孫登 등 모두 50여 명이 가을 7월 13일에 蘇將軍에게 사로잡혀 唐에 보내졌다. 아마도 이것은 까닭없이 무기를 들고 다닌 징험일 것이다. 그런데 百濟國은 멀리서 천황께서 돌보아주시는 데 힘입어 다시 (백성을) 모아 나라를 이루었다. 이제 百濟國이 천황을 시위케 했던 왕자 豊璋을 맞아 장차 國主로 삼기를 원합니다”고 운운하였다. 조를 내려 “군대를 빌고 구원을 청하는 것을 옛날에 들었다. 위험에 빠진 것을 도와주고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항상 법도에 나타나 있다. 百濟國이 곤궁에 빠져 와서 우리나라에 귀의하며 ‘본국에 화란이 있으나, 의지하여 알릴 곳이 없다. 창을 베고 자며 쓸개를 핥는다. 반드시 구원해 달라’고 멀리서 와 표를 올려 아뢰니 뜻을 빼앗기 어렵다. 장군들에게 나누어 명하여 여러 길로 함께 나아가게 하라. 구름처럼 모이고 번개처럼 움직여 함께 沙㖨註 002에 모여, 악한 무리들을 베고 저 위급한 나라를 도우라. 마땅히 有司들은 함께 참여하여 예를 갖추어 출발시켜 보내라”고 운운하였다왕자 豐璋 및 처자와 그 숙부 忠勝 등을 보냈다. 그들이 떠난 때는 7년조에 보인다. 어떤 책에는 “천황이 豐璋을 세워 왕을 삼았으며 塞上註 003을 세워 輔로 삼고, 예를 갖추어 떠나보냈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