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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7-02
맥고려에는 故國川의 原에 묻힌 國壤王과 故國壤에 묻힌 故國壤王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國川의 原이 곧 國壤이라는 이야기가 되니, 맥고려는 原을 壤으로도 표기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죠.
한편, 맥고려의 왕은 閔中原, 慕本原 등 原에 묻힌 사람이 많습니다.
맥고려의 고분이 대부분 들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그 原은 들의 훈차였겠죠.
맥고려는 原을 壤으로도 표기했으니, 그렇다면 壤도 들의 훈차가 됩니다.
한편, 고려의 지명 今勿内는 黒壤으로 바뀌었고, 仍斤內는 槐壤으로 바뀌었으며, 於斯内는 斧壤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壤이 内의 훈차일 가능성이 생기죠.
앞서 壤을 들의 훈차로 추정했는데, 그렇다면 고려에서는 들을 内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농경민에게 들은 중요한 지형이고 그래서 고려의 지명에도 반드시 들어가 있었을 텐데, 고려의 지명에 들어있는 말 중에는 内보다 들에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없습니다.
신라에서는 들을 伐이라 했고 백제에서는 夫里라 했는데, 고려에서 들을 内라 했다면 고려와 한국은 언어가 많이 달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三國史記 髙句麗本紀
0047 王田於閔中原
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必葬於此 不湏更作陵墓
0048 王薨 王后及羣臣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0054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0197 故國川王 或云國襄 葬于故國川原 號爲故國川王
0391 葬於故國壤 號為故國壤王

三國史記 地理志
今勿内郡(一云萬弩)
黒壤郡 一云黄壤郡 本髙句麗今勿奴郡
槐壤郡 本髙句麗仍斤内郡
於斯内縣(斧壤)

國内=國原=國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