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史記 髙句麗本紀
閔中王 四年 夏四月 王田於閔中原
秋七月
又田 見石窟 顧謂左右曰 吾死必葬於此 不湏更作陵墓
五年 王薨 王后及羣臣重違遺命 乃葬於石窟 號爲閔中王
慕本王 六年 冬十一月
杜魯弑其君 遂葬於慕本原 號爲慕本王
故國川王 或云國襄
故國川王 十九年 夏五月
王薨 葬于故國川原 號爲故國川王
故國壤王 九年 夏五月 王薨 葬於故國壤 號為故國壤王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민중왕 4년 여름 4월. 임금이 민중원에서 사냥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을 나갔다가 석굴을 발견하자, 좌우를 돌아보며, "내가 죽거든 이곳에 장사지내고 따로 묘를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
민중왕 5년. 임금이 죽었다. 왕비와 신하들이 유언을 어길 수 없어 석굴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민중왕이라 하였다.
모본왕 6년 겨울 11월. 두로가 임금을 죽였다. 모본원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모본왕이라 하였다.
고국천왕 원년. 고국천왕은 국양왕이라고도 한다.
고국천왕 19년 여름 5월. 임금이 죽자 고국천의 원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고국천왕이라 하였다.
고국양왕 9년 여름 5월. 임금이 죽자 고국양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고국양왕이라 하였다.
三國史記 地理志
高句麗 漢山州 於斯内縣 一云斧壤
高句麗 漢山州 今勿内郡 一云萬弩
新羅 漢州 黒壤郡 一云黄壤郡 本髙句麗今勿奴郡
新羅 漢州 槐壤郡 本髙句麗仍斤内郡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 한산주 어사내현은 부양이라고도 한다.
고구려 한산주 금물내군은 만노라고도 한다.
신라 한주 흑양군은 황양군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고구려 금물노군이었다.
신라 한주 괴양군은 본래 고구려 잉근내군이었다.
國内 = 國原 = 國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