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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7-20
0668 舊唐書(945) 東夷列傳 高麗
其俗多淫祀 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0933 高麗史(1451)
唐遣王瓊·楊昭業來冊王 詔曰
踵朱蒙啓土之禎 爲彼君長 履箕子作蕃之跡 宣乃惠和

1055 高麗史(1451)
致書東京留守曰
當國 襲箕子之國 以鴨江爲疆

1072 高麗史(1451)
金悌還自宋 帝附勑五道 其五曰
箕子啓封 肇於遼左 僧伽演敎 追在泗濱

1102 高麗史(1451)
禮部奏
我國敎化禮義 自箕子始 而不載祀典 乞求其墳塋 立祠以祭
從之

1199 高麗史(1451)
王受金詔於大觀殿 詔曰
粤箕子之故區 寔卞韓之舊壤
根本固而所庇者久 枝葉茂而其承者蕃

1353 高麗史(1451)
遣密直副使李也先帖木兒如元 謝賜孛兒扎宴 表曰
專述職於箕封 每輸誠於華祝

1372 高麗史(1451)
遣知密直司事洪師範如京師 賀平蜀
又請遣子弟入學表曰
儻容互鄕之童 得齒虞庠之胄
臣謹當奉揚聲敎 永綏箕子之封 罄竭忠誠 益貢華人之祝





구당서 동이열전.
고려의 풍속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많아, 영성신, 일신, 가한신 그리고 기자신을 섬긴다.

고려사 933년.
후당에서 왕경과 양소업을 보내 태조 왕건을 책봉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주몽의 상서로운 개국을 좇아, 나라의 군장이 되고, 기자가 번국을 이룬 자취를 밟아, 은혜와 조화를 펼치고 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055년.
거란의 동경유수에게 국서를 보내기를, "본국은 기자의 나라를 이어받아, 압록강으로 경계를 삼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072년.
송나라의 황제가 칙서 5통을 보냈다. 그 다섯 번째 통에서 이르기를, "기자가 봉토를 열어, 요동에서 시작하였고, 승가가 가르침을 펴서 사수 가에서 불교를 전파하였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102년.
예부에서 아뢰기를, “우리나라가 예의에 교화되기는 기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제사를 지내는 법전에는 빠졌사오니, 무덤을 찾게 하고 사당을 세워 제사지내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 말을 따랐다.

고려사 1199년.
신종이 금나라에서 보낸 조서를 대관전에서 받았다. 조서에서 이르기를, "기자가 다스리던 옛 땅은 바로 변한의 옛 봉토이니, 근본이 튼튼한 까닭에, 유구하게 내려왔으며 자손이 번성하여 왕업을 계승한 자도 많았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353년.
밀직부사 이야선첩목아를 원나라에 파견하여 패아찰 연회를 베풀어 준 데 사례하고, 표문에서, "기자의 봉지에서 오로지 제후의 직무를 다할 것이며 황제 폐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1372년.
지밀직사사 홍사범을 명나라의 서울에 보내 촉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또 자제들의 입학을 요청하는 표문을 올리기를, "우리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중국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게 해 주신다면, 교화와 가르침을 높이 받들어 널리 알리고, 옛 기자의 봉토였던 이 땅을 길이 편안하게 하며, 충심을 다해 중국을 섬기겠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