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倭國大亂과 卑彌呼
by Silla on 2020-02-09
왜국대란이 일어난 시기에 대해 사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0289 삼국지 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
0445 후한서 桓靈間(146~189)
0636 수서 桓靈之間(146~189)
0636 양서 光和(178~184)
0648 진서 漢末(220)
0659 북사 光和(178~184)

삼국지에는 왜국도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았으나 70~80년이 지난 후 난리가 나서 여러 해 동안 서로 싸우다 마침내 한 여자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녀의 이름은 비미호였다고 한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住七八十年
倭國亂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名曰卑彌呼

여기서 남자가 왕이었다고 한 이유는 비미호가 여자였기 때문으로, 남자왕 이전에는 여자가 왕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 70~80년 동안 남자왕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그 이전에 남자왕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남자왕의 존재가 인식된 이후 70~80년이 지났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남자왕의 존재를 인식한 시점은 아래의 후한서 기록을 바탕으로 107년으로 설정해 볼 수 있다.

安帝永初元年
倭國王帥升等獻生口百六十人願請見
107년에 왜국왕 수승 등이 160명의 사람을 바치고 황제를 알현하기를 원했다.

그러면 왜국대란은 177년에서 187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 된다.
환제와 영제의 치세기간이라든가, 광화 연간이라든가, 한나라 말기라든가하는 기술들도 대체로 그 즈음이다.
그러나 어느 기록도 왜국대란이 일어난 시점을 특정할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한편, 삼국지에는 비미호가 239년부터 247년까지 조위의 대방과 교류하였다고 되어 있다.
왜 239년부터였는가는 진서에 설명이 있다.
요동을 장악하고 있던 공손씨를 조위가 238년에 토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宣帝之平公孫氏也
其女王遣使至帶方朝見
其後貢聘不絕

비미호는 왜의 내란이 종결되면서 세워진 왕이니 그녀가 239년부터 조공을 하기 시작했다면 왜의 내란은 239년 이전에 끝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내란이 끝났어도 공손씨가 요동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란이 언제 끝났는지 추정할 수 있는 기록도 부족하다.
삼국사기에는 비미호가 173년에 신라에 사신을 보냈다고 되어 있다.

二十年夏五月
倭女王卑彌乎遣使來聘

이게 맞다면 비미호는 공손씨가 요동을 장악하기 전부터 한나라에 조공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손씨가 요동을 장악한 것은 190년경이다. 이것은 다소 어색한 이야기다. 내란을 수습한 새 왕조는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중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173년의 시점에 왜의 통일 왕조가 사신을 보낼만큼 신라가 성장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289년에 편찬된 삼국지에는 사로국이 변진 24국의 하나로 나오고 진서에는 진한왕이 286년까지 서진에 조공을 해 온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로국은 신라의 전신이고 신라는 진한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기록을 1주갑 인하하여 보았다.
그러면 233년이 되는데, 이는 239년부터 247년까지 비미호가 중국과 교류했다는 삼국지 기록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