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는 양산촌이 閼川에 있었고 신라 시조가 양산 기슭의 나정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 나정은 지금의 지명으로는 형산강과 남산 사이에 있죠.
한편, 삼국유사는 양산촌장이 알평인데, 瓢嵓峯에 내려와 양산촌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씨는 지금의 경주이씨죠.
이 이야기에 나오는 瓢嵓으로는 나정에서 바라보이는 남산 해목령의 게눈바위가 어울립니다.
한편, 삼국사기는 선덕왕이 죽었을 때, 신하들이 주원을 왕으로 앉히려 했으나, 閼川이 범람하여 서울에서 北쪽으로 20리되는 곳에 사는 그가 건너오지 못하는 바람에, 경신이 원성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는 그 내막을, 원성왕이 왕이 되기 전에 川北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그 후 선덕왕이 죽었을 때 川이 불어나 川의 北쪽에 사는 주원이 건너오지 못했다고 했죠.
이 두 이야기를 합치면 川北은 곧 閼川이 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와서 그것이 명시되었죠.
川北이 閼川이라는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진 1787년에, 경주이씨 집성이 영천 군수가 되어, 川北의 북쪽에 있는 바위를 瓢嵓이라 생각하고, 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경주이씨 시조의 탄강지로 인식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렇게 되면 신라 시조의 탄생지와 그에 얽힌 양산촌장의 탄강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되는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三國史記(1145)」
一曰閼川 楊山村
髙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徃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收而養之
「三國遺事(1281)」
一曰閼川 楊山村 南今曇嚴寺
長曰謁平 初降于瓢嵓峯 是為及梁部李氏祖
(奴礼王九年置名及梁部)
「三國史記(1145)」
周元宅於京北二十里
㑹大雨 閼川水漲 周元不得渡
「三國遺事(1281)」
王曰 上有周元何居上位 阿飱曰 請密祀北川神可矣 從之
家在川北忽川漲不得渡 王先入宫即位
「新增東國輿地勝覽(1530)」
東川 一云北川 一云閼川 在府東五里 出楸嶺入堀淵
1787 「瓢巖誌序」
至健陵丁未 後孫集星宰永川 始刻而識之
而土居諸雲仍 因碑而閣而壇之 以妥芬苾之享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