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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사전

대성산성

[ 平壤 大城山城 ]

지역 평양
성벽 단면도 및 세부

성벽 단면도 및 세부

평양시 동북방 대성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으로, ‘대성산성(大聖山城)’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대성산은 평양 중심지에서 동북쪽으로 7㎞ 떨어져 있으며, 행정구역상 평양시 대성구역에 속한다. 산의 남쪽에는 구릉성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산기슭과 구릉지대를 따라 1,200여 기의 고구려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남쪽 4㎞ 거리에는 대동강이 활 모양으로 들판을 감싸며 서쪽으로 흘러가다가 평양 시가지 동북에서 방향을 꺾어 남류하게 된다.

대성산은 평양 부근에서 가장 험준한 지세를 자랑하는데, 주봉인 을지봉(乙支峰)은 표고 274m이다. 동·서·남쪽은 급한 경사면을 이루고, 소문봉(蘇文峰), 을지봉, 장수봉(長壽峰), 북장대, 국사봉, 주작봉 등이 연봉을 이루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그 안에는 2개의 계곡이 있다.

1958-61년 6차에 걸쳐 대성산성과 안학궁 등 주변 일대를 상세하게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옹성(甕城), 호(濠), 황(隍), 장대(將臺), 문지(門址), 각루(角樓), 치성(雉城), 연못 및 식량 창고와 무기고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남문지 부근의 성벽 160m 구간을 제외하고는 돌로 쌓았다. 전체 둘레는 7,076(또는 7,218)m이고, 겹성을 포함한 총 길이는 9,284m에 달한다. 남문지에서 주작봉 및 소문봉에 이르는 980m 구간에는 2중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돌은 대부분 사암(砂巖)이며, 드물게 화강암도 확인되는데, 주로 사각추(四角錐)로 다듬어서 축조하였다. 성벽 하단부에는 큰 석재를 사용하였고, 위로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소문봉의 기초 부분은 일정한 간격마다 한 단위를 이루고 있는데, 한 단위의 너비는 1.5-1.6m 내외이고, 단위마다 15-20㎝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은 축조 이후 자연적으로 메워졌는데, 보고자는 지하수의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시설물로 추정하였다. 성벽 기초에는 큰 석재를 계단식으로 축조한 보강시설이 확인되었는데, 계단의 수는 4-5단, 1단의 높이는 0.5-1.0m 내외, 폭은 1.5-2.0m 내외이다. 이 보강시설의 표면은 토사로 덮어 놓았고, 축조된 계단의 석재들 사이에는 점토를 다져 넣어 견고하게 하였다.

주작봉의 남쪽 경사지 중앙부는 2중으로 성벽을 축조한 지점이다. 외성벽은 훼손이 심하여 원상을 확인하기 힘드나, 내성벽은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내성벽은 능선에서 4m되는 경사면 지하 1.5m 지점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돌은 사암제이며, 외면은 4각추 모양의 성돌로 축조하고 다각추 모양의 성돌로 적심하였다. 성벽 기초부는 암반이 노출된 지점은 그대로 이용하였고, 암반이 없는 지점은 생토층까지 파고 들어가 대형 석재로 높이 0.5-1.0m 정도로 기초를 구축하고 그 위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주작봉에서 소문봉에 이르는 이 2중 성벽은 원래 외성벽을 축조하였다가 지형을 감안하여 외성벽을 허물어서 내성벽을 다시 축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남문지가 있는 계곡 160m 구간과 주작봉 및 소문봉에서 남문지로 내려오는 경사지 약 100m 구간은 돌과 흙을 섞어 축조하였다. 성벽 너비는 30m 정도로 양쪽 면석은 4각추 형태로 다듬은 성돌로 쌓았고, 그 사이에 점토와 잡석을 다져 쌓았다. 성벽 외측의 석축 부분은 폭 4.6m, 높이 4.0m이며, 내측의 석축 부분은 폭 2.4m, 높이 3.0m인데, 모두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씩 들여쌓는 물림쌓기법으로 축조하였다. 성벽 내부는 지표에서 20㎝까지는 흑토층이고, 다음 40㎝ 높이는 황토층이며, 그 위에는 토석(土石)을 혼축한 층이다.

문지는 남문지를 비롯하여 19개소가 확인되었다. 남문지는 산성에서 가장 낮은 소문봉과 주작봉 사이의 계곡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문지 기초부가 확인되었는데, 성벽에서 20m 정도 ‘철(凸)’자형으로 돌출하여 장방형으로 시설되었다. 기초부는 현재의 지표에서 1.5m 아래에 수평으로 정지하고 사암 석재를 4각추로 가공하여 지표면까지 3-4단 축조하였는데, 전면과 좌·우면 모두 조금씩 물려쌓는 계단식 축조방식이 적용되었다. 규모는 길이 20m, 폭 14m이다. 가공한 석재 중심에 직경 18-25㎝, 깊이 25㎝ 정도의 구멍이 파인 문초석을 비롯하여 화강암제 초석 8개가 문지 부근에서 발견되었는데, 위치는 모두 교란되었다.

성벽에는 치(雉)를 65개소 설치하였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소문봉의 치를 살펴 보면 성벽에서 직각으로 돌출시키고 있으며, 규모는 길이 12m, 너비 10.3-9.8m이다.

건물지는 18곳이 확인되었다.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 자리가 발견되었는데, 지표 1.5m 아래에서 탄화된 곡식과 목탄이 덮힌 지층이 길이 약 80m 정도로 확인되었다. 탄화된 곡식은 주로 조, 수수, 밀이다. 또한 연못이 10여 개소 확인되었는데, 잉어못, 사슴못, 구룡못 등은 조사 당시에도 물이 고여 있었다. 사슴못은 1변 16.5m, 잉어못은 1변 27m인 정방형으로 현재 수심은 1m 정도이다. 대성산성의 축조 연대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유적유물도감 4-고구려편 1-(조선유적유물도감편찬위원회, 외국문종합출판사, 1989년)
  • 대성산 못(池) 발굴 중간 보고(전제헌, 고고민속 3, 1964년)
  • 대성산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관한 연구(채희국, 유적발굴보고 9, 1964년)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 고고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한 용어에 대한 정의와 함께 그간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된 중요 유적들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수록한 『한국고고학사전』. 우리나라 고고학을 총괄하는 고고학일반편과 주요 시대를 망라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고구려 및 발해 시대, 백제시대, 신라시대 등 7개편의 총 8개 분야로 구분하여 1,650여 항목의 원고를 작성하고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면과 도판을 수록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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