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라는 동일한 기원에서 나왔고 서로 인접한 나라에서 만들어졌는데, 왜 고려-백제-마한과 가라-신라에서 만든 금동관이 확연하게 다를까?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고찰해 본다.
❶ 고려-백제-마한은 중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가라-신라는 초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려의 고분 벽화나 백제의 벽돌 무덤은 모두 중국 문화인데 신라에는 이러한 것들이 없다. 반면 신라에는 초원의 돌무지 나무덧널무덤이 있는데 이번에는 고려와 백제에 이것이 없다. 그리고 가라와 신라의 고분에서는 초원의 고분처럼 순장이 널리 발견되는데 백제와 고려의 고분에서는 순장이 발견되지 않는다.
❷ 관복은 무덤 양식과 함께 정치외교적으로 예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라와 가라는 관복 문제로 무력 충돌을 한 적이 있고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기 위해 관복을 당나라식으로 바꾼 바 있다.
일본의 전방후원분은 대화왜가 열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방 세력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