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
by Silla on 2026-10-01
나이군(奈已郡): 신라 삭주(朔州) 나령군(奈靈郡)의 고구려 때 지명으로 현재의 경북 영주시에 비정된다(李丙燾 역주, 1977, 567쪽). 날이군(捺已郡)이라고도 한다. 나이군은 지리지3 신라편 무주에서는 보이지 않고, 지리지2 신라조에서는 나이군이 삭주에 소속된 ‘나령군’으로 기록되어 있고, 나령군은 백제의 나이군인데 파사왕이 빼앗았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군이 파사왕때 신라 영역이 되었다는 기사가 본서 신라본기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고려사』 지리지 등 후대의 지리서에는 본서의 ‘本百濟奈已郡’을 ‘本高句麗奈已郡’으로 고쳐 읽고 있으나 별다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고려사』 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안동부조에는 “順安縣本高句麗柰已郡, 新羅婆娑王, 取之, 景德王, 改爲柰靈郡”으로 되어 있고,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영천군조에서도 “榮川郡, 本高句麗 柰巳郡, 新羅 婆娑王取之, 景德王改爲柰靈郡 … 本朝太宗癸巳, 例改爲榮川郡”이라 하여 나이군을 고구려 땅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이군(奈已郡)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지 편찬 과정의 오류로 보는 견해가 먼저 제기되었다. 그 하나는 본서 편자가 백제본기에서 백제 멸망 시 37군(郡)이라는 자료를 보고 이 군수(郡數)에 맞추기 위하여 고구려 지명으로 가야 할 나이군을 백제 지명에 더하였다고 보는 견해(井上秀雄, 1974, 89~91쪽), 본서 권35 지리 제2 삭주조의 ‘柰靈郡本百濟奈已郡’이라는 기사는 편찬자의 착오인데 백제 지리지의 편찬자는 이를 보고 나이군이 본래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오인하여 무진주조의 말미에 붙인 것이라는 견해(노중국, 1995, 168~170쪽)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경상북도 북단에 있는 나이군이 무진주에 소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본서 찬자의 두찬으로 보기도 한다(김태식, 1997, 38쪽). 이와 달리 실제 백제의 영유와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상정하는 견해가 있다. 지리지의 나기군(奈己郡) 기록은 백제, 신라, 고구려 모두에게 점유되었던 지역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기군은 경북 영주 지역으로 비정되기 때문에 『고려사』 지리지 순안현의 연혁에는 나기군이 고구려의 영역으로 수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나기군의 존재는 바로 그러한 영역 지배의 추이를 반영한 백제측의 전승 자료에 의거한 것이며. 나기군이 웅주, 전주, 무주의 어느 곳에도 귀속될 수 없어서 백제편 말미에 배치해두었다는 것이다(이강래, 1996, 26~39쪽).
최근에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삼국의 분속은 주(州) 단위로 일괄 처리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군의 사례는 편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데, 백제조 맨 끝에 수록된 것은 백제로 귀속되는 3주를 모두 정리한 뒤 삭주 소속이면서 백제로 분속된 나이군을 추록(追錄)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윤경진, 2012a, 52~53쪽).
〈참고문헌〉
李丙燾 역주,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노중국, 1995, 「三國史記의 百濟 地理關係 記事 檢討」, 『三國史記의 原典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강래, 1996, 「新羅奈已郡考」, 『신라문화』 13
김태식, 1997, 「삼국사기 지리지 고구려조의 사료적 검토」, 『역사학보』 154
윤경진, 2012a, 「『三國史記』 地理志 수록 군현의 三國 分屬」, 『한국사학보』 47
井上秀雄, 1974, 「三國史記 地理志の史料批判」,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