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릉비 396년.
광개토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였다.
백제왕이 곤란해져 남녀 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영원히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광개토왕은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얻고 백제왕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397년.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광개토왕릉비 399년.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화통하였다.
광개토왕릉비 404년.
왜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대방 지역에 침입하였다.
광개토왕의 군대가 길을 끊고 소탕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405년.
아신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가 정사를 대리하면서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설례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국에서 부음을 듣고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전지는 왜인을 머물러 두어, 자기를 호위하게 하고, 바다의 섬에 의거하여 기다렸더니, 나라 사람들이 설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414년 광개토왕릉비.
수묘인 연호.
새로 온 한국인과 예인.
모루성 2가는 간연.
미추성은 국연 1가 간연 7가.
고모루성은 국연 2가 간연 8가.
비리성 3가는 간연.
0396 「廣開土王陵碑」
王躬率□軍討伐殘國
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永爲奴客
太王恩赦□ 迷之愆錄其後順之誠
於是 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0397.05 「三國史記」 百濟本記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0399 「廣開土王陵碑」
百殘違誓與倭和通
0404 「廣開土王陵碑」
倭不軌侵入帶方界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斬煞無數
0405.09 「三國史記」 百濟本記
王薨 王仲弟訓解攝政 以待太子還国
季弟碟禮殺訓解 自立爲王
腆支在倭聞訃 哭泣請歸
倭王以兵士百人衛送 既至国界
腆支留倭人自衛 依海島以待之
国人殺碟禮 迎腆支即位
0414 「廣開土王陵碑」
守墓人烟戶
新來韓穢
牟婁城二家爲看烟
彌鄒城 國烟一 看烟七
古牟婁城 國烟二 看烟八
比利城三家爲看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