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57년 경주의 6촌장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라이름을 서나벌이라 하였다. 이후 사라, 사로, 신라 등으로 불리다 503년 신라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신라라 불리기 이전의 시기까지 포함해서 이 왕국을 신라라 부른다. 한국통일 이후를 통일신라라 하여 이전과 구별하기도 하는데 왕조가 교체된 것이 아니므로 따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서기전 18년 온조는 나라를 세우고 십제라 했다가 이내 백제로 고쳤다. 538년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 왕국을 백제라 부른다. 900년 견훤도 나라를 세워 백제라 하였다. 사람들은 온조가 세운 백제와 구별하기 위해 견훤이 세운 백제를 후백제라 부른다.
서기전 37년 주몽은 나라를 세워 고구려라 했다. 이 왕국은 장수왕 이후 고려로 표기되었다. 901년 궁예는 나라를 세워 고려라 했다가 이내 마진, 태봉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18년 왕건은 궁예를 내쫓고 다시 국호를 고려로 되돌렸다. 이후 주몽이 세운 나라는 고구려라 하여 이 고려와 구별되었다.
대동강 유역에는 오래 전부터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 조선은 서기전 222년 이전에 연나라에 병합되었다가 한나라 때는 빈 땅이 되었다. 서기전 195년경 연나라의 위만이 이곳으로 와 왕조를 세웠는데 이 왕조 또한 조선이라 불리었다. 한편, 사기에는 서기전 1100년경 은나라의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왕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유사에는 서기전 2333년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392년 고려의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이성계는 처음에 고려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다 이듬해 조선으로 바꾸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조선은 고조선이라 하여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되었다.
여기서 고려와 조선은 백제와 중복 국명을 구별하는 방법이 반대인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의 경우에는 후대에 나온 국호에 접두어를 붙였지만 고려와 조선은 원래의 국호에 접두어를 붙이거나 초기이름으로 바꾸어 구별한 것이다. ᐥ뒤에 나온 나라가 국호의 원래 주인을 초기이름으로 되돌리거나 접두어를 붙여 밀어내고 그 이름을 차지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최초로 사용된 국명이 보존되고 후대에 사용된 국명이 마땅히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또 전후(前後)나 동서남북(東西南北)보다는 왕조의 이름을 접두어로 붙이는 것이 확장성이나 고유성을 고려할 때 보다 효과적이다.ᐥ 따라서 주몽이 세운 나라에게는 고려라는 정식 이름을 돌려주고 왕건이 세운 왕조를 왕씨고려라 하여 구별하여야 한다. 또 대동강 유역에 오래 전에 있었던 나라에게는 조선이라는 원래 이름을 돌려주고 이성계가 세운 왕조를 이씨조선이라 하여 구별해야 한다.
그런데 단군, 기자, 위만 그리고 견훤이 세운 왕조는 왕조의 성씨가 분명하지 않거나 왕위계승이 오래 이어지지 않아 왕조의 성씨를 접두어로 붙이기가 애매하다. 이런 경우에는 창업자의 이름을 붙여 각각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견훤백제라 부를 수밖에 없다.
주몽이 세운 나라는 삼국사기(1145) 이전에는 대체로 고려라 불리었다. 삼국사기는 구당서(945)나 신당서(1060) 등의 중국사서와 내용이 동일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고려라 표기된 것을 모두 고구려로 바꾸어 표기한 점이다. 삼국사기보다 훨씬 뒤인 1281년에 편찬된 삼국유사에도 주몽이 세운 나라를 대부분 고려라 표기해 놓았다. 주몽이 세운 나라를 고구려라 칭하게 된 것은 왕고의 의도적인 개칭작업의 결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씨조선이란 표현에는 시비가 많다.
흔히 이씨조선이란 용어는 일제가 조선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씨조선이란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왕위가 세습되고 국호가 ‘조선’인 왕조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 자체에는 어디에도 비하의 뜻이 없다. 다만 일제가 이씨조선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이조의 부정적인 면을 주로 부각시키는 바람에 이 용어에 부정적인 느낌이 덧칠되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인상이 덧칠되어졌다고 해서 그 용어를 버리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덧칠되어진 부정적인 인상을 바로잡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원래 이씨조선의 줄임말인 ‘이조(李朝)’는 일조시대에 독립 운동가들도 많이 사용한 말이었다.
신한혁명당 대동단결선언은 1917년 상해에서 신규식 등이 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한 민족대회의의 소집을 제의한 문서인데, 발기인으로는 신규식을 비롯하여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윤세복, 조소앙, 신석우, 한진교 등 14명이 참여하였다. 그 선언의 서두에는 “대개 뭉치면 서고 나뉘면 쓰러지는 것은 천도의 원리요, 나뉜 지가 오래면 합하고자 하는 것은 인정의 율려라. 생각건대 멀리로는 3백년 유자의 당론이 이조(李朝) 멸망사의 태반을 점령하였고 가까이로는 13도 지사가 장혁이 새로운 건설의 중심을 어지럽히도다.”라는 부분이 있다.
의열단은 1919년 길림성에서 김원봉 등 13명의 독립투사들이 암살, 파괴, 폭동 등 폭력적 독립운동노선을 실천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이다. 1923년 신채호는 이 의열단의 이념과 노선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을 천명하는데, 그 선언에는 “강도 일본의 구축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첫째는 외교론이니, 이조(李朝) 5백년 문약 정치가 '외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세에 더욱 심하여”라는 부분이 있다.
또 김씨조선에서도 이씨조선이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단순히 ‘조선’이라고 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말하는 것이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반드시 ‘리씨조선’ 또는 ‘리조’라는 표현을 써서 자신들과 구별하고 있다.
이북의 국호가 조선인 점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약칭은 공식적으로 '한국'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은 '조선'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 외에 여러 가지 호칭이 사용되어져 왔다.
조선은 냉전시대에 주로 북괴라고 불려왔다. 북괴는 '북쪽 괴뢰국'이라는 뜻이다. 괴뢰국은 실질적인 자주권이 없이 외세에 의해 조종 받는 국가를 말한다. 조선은 건국될 당시만 해도 소련의 괴뢰국이었으나 이내 자주국으로 탈바꿈했다. 또 1950년대에 이미 중국군이 철수했으니 아직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 비해 자주성의 측면에서는 훨씬 앞선다. 따라서 북괴란 명칭은 맞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남한과 북한이란 호칭을 많이 쓴다. 각각 '남부 한국'과 '북부 한국'이라는 뜻으로 한반도에서는 한국이 유일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국과 조선은 모두 유엔에 가입하여 세계로부터 둘 다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조선도 엄연히 유엔이 인정하는 독립국가인데 이것을 한국의 일부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조선에서는 남조선과 북조선이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각각 '남부 조선'과 '북부 조선'이라는 뜻이다. 이 또한 남한이나 북한과 같은 이유로 옳지 않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역사상 조선이라는 국호가 여러 번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역사를 논할 때에는 이들 ‘조선’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체로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이씨조선과 같이 앞에 왕조를 표시하는 접두어를 붙여 구별하고 있다. 이것은 사산조 페르시아(Sassanid Persian Empire)에서 보는 것처럼 매우 유용한 구별법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의 송(宋)과 구별하기 위하여 420년 유유(劉裕)가 세운 송(宋)을 유송(劉宋)이라 하고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宋)을 조송(趙宋)이라 부르는 것을 들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한반도 북부에 있는 조선을 김씨조선이라 부르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는 나라를 마치 왕조처럼 김씨조선이라 부르면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이 표방하는 공화국은 형식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세습체제이므로 공화국 보다는 왕조에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이 세습체제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김씨조선은 인민조선 또는 공화국조선으로 불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