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설갑수는 5·18에 대해 전두환과 미국의 대변인을 하려는가

2019.06.09 15:18 입력 2019.06.09 20:14 수정
김용만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

■5·18진실규명을 밝히는 증언의 의미

5·18역사왜곡처벌농성단은 겨울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과 때이른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6월7일 현재 117일째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중이다. 지난 2월8일 지만원 초청 국회공청회 이후 농성단은 망언3적 국회제명, 전두환과 지만원의 구속수사,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5·18진상조사위 즉각 가동이라는 목표 아래 활동해왔다. 특히 10차에 걸친 매주 목요일 5·18행동의 날에 구체적인 증언과 사실을 토대로 학살과 왜곡의 주범들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지며 굳은 의지로 투쟁을 계속해 왔다.

촛불혁명으로 당선되어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올리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자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만원 일당과 극우 유튜브들의 악의적인 왜곡선전이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올해 5·18은 의미있는 계기를 맞았다. 39년간 숨겨왔던 비밀을 고백한 전 미군 501정보여단 소속 김용장씨와 505보안대 특명반장 허장환씨의 매우 뜻깊고 소중한 증언에 뒤이어 오원기씨, 문용식씨, 최종호씨 등의 양심고백이 나왔다. 과거 힌츠페터 등 외신기자들의 활동과 헌틀리, 피터슨 선교사 부부의 증언, 이경남과 신순용, 최영신씨 등 계엄군의 용기있는 증언이 계속 나왔지만 올해의 증언은 양과 내용의 중요성에 있어 의미가 매우 컸다. 재조사에 대한 전국적 여론이 높아지고 5·18진실 말하기운동의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로써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던 80년 5월21일의 전남도청앞 집단학살은 그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전두환이 이날 헬기를 타고 정오 무렵 광주에 도착해 K-57 제1전투비행단장실에서 정호용, 이재우 등과 회동한 것은 이제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헬기사격이 시행되었고, 도청 앞에서는 앉아쏴 자세로 집단발포가 이루어져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앉아쏴 자세는 자위권이 아니라 사살명령 없이는 실행이 불가능한 조준사격이라는 증언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200여명 행방불명자의 의문에 대해서도 이들의 소중한 증언으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계엄군이 항쟁 진압후 가매장했던 시신을 파내 지문을 채취하고 광주 국군통합병원에 설치한 임시화장장에서 소각하는 한편 일부는 시청의 쓰레기차에 실어서 매장했고 일부는 수송용 헬기로 바다에 투기했다는 증언은 이제 검증과 조사를 통해 국가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5·18 증언에 대한 물타기 공격의 의도를 묻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증언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포함한 물타기와 왜곡의 가짜뉴스 대량유포의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 번역자라는 설갑수씨의 경향신문 6월3일자 기고문은 충격적이다. ‘5·18의 꿈같은 증인 김용장은 미 육군 군사정보관이 아니었다’라는 제목의 글은 바로 그날 뉴데일리 등 극우 인터넷 신문과 ‘펜 앤드 마이크’ 등 그동안 5·18 왜곡에 앞장서 온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 바로 인용되며 김용장씨 증언의 신뢰성에 커다란 흠집을 냈다. 이는 마치 도둑을 신고하니 어떻게 도둑인지 알았느냐, 당신이 누군데 도둑이라고 신고하느냐 시비를 거는 상황과 흡사하다.

설씨는 제목에 ‘…이 아니었다’라고 단정적인 표현을 썼고, 특히 ‘위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증언 전체가 가짜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설씨는 누구이길래 이런 글을 무슨 이유로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스스로 글을 써서 투고했을까? 그는 영문판 <Gwangju Diary>를 번역한 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마저도 5·18기념재단으로부터 돈을 받고도 마치 받지 않고 봉사한 것처럼 선전해왔다가 나중에야 돈을 분배했다고 변명했던 사람이다. 2년전 5·18기념재단이 UN에서 열었던 학술회의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출연한 것과 관련하여 마치 5·18기념재단과 광주를 대변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행세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군 정보보안사령부 등 민감한 기관에 개인적으로 질문해 알아낸 사실이라며 김용장씨의 신분과 증언의 신뢰성을 공격했다.

김용장씨의 신분에 문제를 제기한 설씨의 신분 역시 확실하지 않다. 그는 2017년 광주지역 매체에 자신을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의 기자였다고 소개한다. 설씨의 글이 몇 차례 실린 ‘Property Casualty 360’은 해당 매체의 생명보험 정보관련 에디션이다. 설씨는 또 자신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컨설턴트이자 미국 Unite Here! 노조의 분석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와 대립하는 측에서 확인해보니 두 곳 모두 설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회답을 받았다고 했다.

5·18농성단 측에 걸어온 전화에서 설씨는 단지 김용장씨가 미군 정보요원인지 아닌지가 5·18의 핵심적 진실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해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충심에서 우러난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고문이 공개되었을 때 일어날 파장에 대해서도 이미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농성단 측은 이전 그의 행적을 미루어볼 때 그의 말과는 다른 의도가 숨어있을 개연성을 포착했다. 5·18관련자는 물론 시민단체와 민주시민들이 5·18의 진상규명에 몰두해 있고, 5·18에 관한 모든 정보를 보고받은 미국이 살인마 전두환을 지원한 책임이 몇몇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다. 팀 셔록의 체로키 파일 분석에 의하면 5·18 당시 한국 주재 CIA 요원 그레그는 전두환에게 광주항쟁을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22일 백악관 정책검토회의(PRC)의 핵심 참석자였고, 설씨는 그레그와의 밀접한 관계를 수차례 발언한 바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갑자기 김용장씨의 증언을 위증이라 하며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그가 가졌다고 주장하는 5·18에 대한 충심을 되려 의심케 한다. 오히려 5·18에 대한 책임을 일관되게 부인해온 미국의 태도에 편승 혹은 나아가 옹호하려는 숨겨진 다른 목적을 겨냥한 의도적 왜곡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해진다.

■무지에 발붙인 은밀한 목적의 왜곡행위를 사죄하라

첩보의 세계에서 신분이란 비밀에 속한다. 국정원 직원들은 소속기관을 회사라고 부르고 서로 사장, 이사, 부장으로 부르며 특수임무의 경우는 더욱 남이 쉽게 알 수 없어야 한다. 설씨가 김용장씨를 단순 통역관 또는 언어전문가라며 정보관련 업무에서 배제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다. 본 농성단에 들어온 제보에 따르면 당시 광주 주재 미 501정보여단 요원이었던 그린 그릭(Green G. Greek)은 한국어를 알지도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고, 처음 김용장씨가 통역관으로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제 정보수집 현장에 투입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보고서 역시 김용장씨의 손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본부와 본국 정부에 보낼 때는 그릭이 자신의 고유코드로 보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설갑수씨의 사실확인 요청에 미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 공보국이 “민간인 언어전문가나 통역은 정보전문가로서 훈련받거나 고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신원이 불확실한 민간인에게 국가안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이 소속 요원에 대한 정보를 사실 그대로 공개할 리 없다. 정보기관 요원은 퇴임시 근무 중 취득한 정보를 일체 발설하지 않는 기밀보호 서약을 하고 나온다. 설갑수씨의 질문에 그들이 사실 그대로 말하리라는 것은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5·18 당시 서울 공군 706보안부대장 운전병이었던 오원기씨는 최근 광주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1980년 5월21일 미 8군 용산 헬기장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귀빈용 공군 헬기에 혼자 탑승한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전두환이 5월21일 광주행 헬기를 타고 내린 곳의 증언이 둘 다 있는 것이다. 김용장씨의 진술 하나만으로 전두환의 광주 집단사살 명령이 증명된 것이 아니며, 이를 뒷받침하는 양심고백이 더 나와야 한다. 우리는 이미 80년 당시부터 5·18에 대한 모든 기록이 왜곡 조작되었고 그 이후 80위원회와 5·11대책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광범위하게 조작과 증거인멸이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다. 미국이 30년이 지난 기밀해제 자료들을 한국 측에 제공할 때도 검게 칠하고 가려놓은 채 복사해 보내서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것도 그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설씨는 기고문에서 외국인 철수작전(NEO)을 부인하며 김용장씨가 거짓말을 한 증거로 선교사들의 증언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외무부의 기록에는 전시 또는 천재지변 상황에나 실시되는 자국민 소개에 미국인 23명 일본인 14명이 광주와 목포를 벗어난 것으로 되어있으며 한국 공군과 보안사 기록에도 증거가 남아있다.

더 이상 검증 없는 주장과 거짓에 5·18 진상규명의 초점이 흐려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설씨는 그의 기고문을 끝맺었다. 그러나 설씨의 주장은 최근 수세에 몰려있던 극우세력에게 반격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쥐어준 왜곡행위가 되었다. 이로 인해 39년간에 걸쳐 진실규명 투쟁을 해온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민주시민의 가슴은 멍들었고, 앞으로 계속해서 나와야 할 계엄군 측의 양심고백과 증언을 주저하게 만드는 후유증이 예상된다. 5·18의 충심을 가장한 그의 행위는 더욱 가증스런 일이다. 설씨는 지금이라도 그의 감추어진 목적과 헛된 소영웅주의를 포기하고 5·18영령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함이 마땅하다.

[기고]설갑수는 5·18에 대해 전두환과 미국의 대변인을 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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