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역사를 살펴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씨는 생물학적인 부계혈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청 자료가 보여주는 우리나라 성씨의 경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첫째, 남의 성씨를 빌려 쓴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 성씨를 썼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썼더라도 여러 세대를 이어오며 그 성씨를 사용하고 소속감을 느껴왔다면 그 성씨의 사람이라고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흑인과 백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흑인과 백인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아이는 흑인의 외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모두 흑인으로 여길 것이고 스스로도 흑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정체성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생기는 것으로 생물학적인 유전자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써서 혈통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조상 중 누군가가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쓴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는 있다. 근래에는 Y-DNA분석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자신의 부계혈통이 성씨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성씨에 대한 소속감에 큰 변화가 올 거 같지는 않다. 이것은 민족에 대한 소속감으로부터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성씨 중에는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왔다는 유래가 분명한 성씨가 많다. 중국, 여진, 일본 심지어는 월남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성씨의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한족, 만주족, 일본인 또는 월남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를 이어 한민족공동체에 섞여 살면서 정체성이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성씨에 대한 소속감도 마찬가지다.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썼더라도 여러 세대를 이어오며 그 성씨를 사용하고 소속감을 느껴왔다면 그 성씨의 사람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 사람의 성씨에 대한 정체성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씨와 대체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성씨가 모이고 모여 통계청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적으로 어떤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쓴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성씨의 통계가 보여주는 경향을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정체성의 측면에서는 그 의미를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신라/임나계 성씨와 영남 지역의 본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민족의 정체성이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여기서 잠깐 성씨를 화제로 삼은데 대해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해소하고자 한다.
우리 조상들은 가문을 중시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봉건시대의 가치관에 의한 것이므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늘날에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가문보다는 그의 인간성과 사회적 역할을 가지고 평가한다. 인간(人間)이라 함은 사람들 틈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 틈에 사는 사람으로서 개인은 마땅히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을 보통 인간성이라고 한다. 또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기 위해 물질을 필요로 하는데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물질의 생산에 참여하고 기여해야 한다. 이것을 보통 사회적 역할이라고 한다. 노비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특별히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물질과 용역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양반들보다 더 생산성이 떨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가치관에 의한다면 가문은 자긍심이나 수치심과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쓴 행위도 당시의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못마땅한 일이 될 수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좋은 가문의 성씨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이 돌아왔다. 당연히 그런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유력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제시대에 조선인의 80%가 창씨개명을 한 이유와도 동일하다. 오늘날 유력가문이라고 자부하는 성씨도 일제시대에는 대부분 창씨개명을 했었다. 또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쓰는 행위는 일반 민중들뿐만 아니라 왕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민중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유력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쓴데 비해 그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주로 중국 3황5제의 후손을 자처했다. 왕씨고려같은 경우는 당나라 숙종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다 원나라에서 왕이 수모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다른 가문의 성씨를 가져다 쓴 이러한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화석연료 덕분에 난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이 왜 귀중한 자연을 훼손하며 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썼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성씨문제를 고찰한 것은 성씨를 통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파악해 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