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元紹)가 답돈(蹋頓), 난루(難樓), 초왕(峭王), 한로왕(汗魯王)에게 황제의 명령을 위조해 인수를 하사하고 선우로 삼음
[후]한 말기에주 001
요서오환(遼西烏丸)의 대인(大人)인 구력거(丘力居)는주 002무리 5천여 락(落)을 거느렸고, 상곡오환(上谷烏丸)의 대인인 난루(難樓)는주 003무리 9천여 락을 통솔하였으며, 각자 스스로를 왕(王)이라 칭하였다. 요동속국(遼東屬國)의 오환 대인 소복연(蘇僕延)은주 004무리 1천여 락을 거느리고 스스로를 초왕(峭王)이라 칭하였다. 우북평오환(右北平烏丸)의 대인인 오연(烏延)은주 005무리 8백여 락을 거느렸는데 스스로를 한로왕(汗魯王)이라 칭하였다. 이들은 모두 계교와 방책이 있었으며 용감하고 건실하였다.주 006
중산태수(中山太守)주 007[이었던] 장순(張純)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 후주 008스스로를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칭하고 3군(郡) 오환의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元帥]가 되었다.주 009그리고 청[주](靑州), 주 485 서[주](徐州), 주 011 유[주](幽州), 기[주](冀州) 주 0124주(州)를 침입하고 노략질하였으며, 주 013관리들과 백성들을 죽이고 붙잡아갔다. 영제(靈帝) 주 014
후에 구력거가 죽고주 019아들 누반(樓班)이 나이가 어렸던주 020반면에 조카인 답돈(蹋頓)에게 무예와 지략이 있었기 때문에 [답돈이] 대신 대인이 되어 3왕의 무리들[三王部]주 021을 모두 거느리니주 022무리들은 모두 그의 명령[敎令]주 023을 따랐다. 원소(袁紹)와 공손찬(公孫瓚) 주 024이 계속 전투를 벌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주 025 답돈은 사신을 원소에게 보내 화친(和親)을 구하였고, [화친이 성사되자]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공격하였다.주 026 원소는 황제의 명령[制]을 위조하여 답돈, [난루], 초왕, 한로왕에게 인수(印綬)를 하사하고, 모두 선우(單于)로 삼았다.주 027[배송지주]
중산태수(中山太守)주 007[이었던] 장순(張純)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 후주 008스스로를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칭하고 3군(郡) 오환의 [군대를 지휘하는] 우두머리[元帥]가 되었다.주 009그리고 청[주](靑州), 주 485 서[주](徐州), 주 011 유[주](幽州), 기[주](冀州) 주 0124주(州)를 침입하고 노략질하였으며, 주 013관리들과 백성들을 죽이고 붙잡아갔다. 영제(靈帝) 주 014
각주 014)
말년에주 015[후한 조정은] 유우(劉虞)
주 016靈帝(157~189;재위 167~189):이름은 劉宏이며, 章帝의 玄孫이다.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解瀆亭侯에 봉해졌다. 永康元年(167)에 桓帝 사후 竇太后와 그녀의 아버지 竇武가 皇帝로 옹립하였다. 재위기간 중 竇武와 陳蕃이 宦官을 주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宦官들은 계속 정치에 간여하였다. 환관들은 黨禁을 다시 일으켜서 李膺·杜密 등 100여 인을 체포하여 죽였고 豪傑과 儒學者, 덕행 있는 사람을 黨人으로 몰아 600~700여 인을 죽이거나 유배 보내거나 禁錮에 처하였다. 西邸에서 공개적으로 官爵을 팔았으며 天下의 田畝에 100錢의 세금을 매겨 宮室을 세웠다. 中平元年(184)에 黃巾賊이 봉기하여 後漢이 사실상 붕괴하였다.
각주 016)
를 유주목(幽州牧)주 017劉虞(?~193):後漢시대 東海郡 郯縣 사람이며 字는 伯安이다. 孝廉에 察擧되어 幽州刺史·甘陵相·宗正을 지냈다. 靈帝때 前中山相 張純과 前泰山太守 張擧 등이 烏桓과 연합하여 起兵하자 幽州牧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진압하여 太尉로 승진되고 容丘侯에 봉해졌다. 董卓이 정권을 잡은 후 大司馬에 임명되었고 襄賁侯에 봉해졌다. 袁紹가 董卓을 토벌하려 할 때 그를 맹주로 삼으려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靑州·冀州 등지를 수년 동안 경영하여 농경을 권유하고 독려하여 민생이 비교적 안정되었다. 후에 公孫瓚과 사이가 멀어져 그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살해되었다.
각주 017)
으로 임명하니, [유우는] 호(胡)를 불러모아 장순의 머리를 참하니, 주 018북쪽의 변방지대[北州]는 이에 안정되었다.幽州牧: 幽州의 지방장관을 뜻한다. 漢武帝 때 전국을 13州部로 나누고 刺史를 두어 諸郡을 감찰하게 하였다. 秩은 六百石이었다. 成帝 綏和元年(전8) 刺史를 州牧으로 改稱하고 秩은 二千石으로 높아져 지위는 九卿 다음이었다. 哀帝 建平 2년(전5) 원래의 명칭과 秩로 바뀌었다. 元壽 2년(전1) 다시 州牧으로 바꾸었다. 後漢時代에는 刺史를 설치하고 秩은 六百石이었으며, 監察을 담당하였다. 후에 점차로 州가 행정구역의 기능을 하면서 일급 지방행정장관이 되었다. 靈帝 中平 5년(188) 太常 劉焉이 黃巾賊의 난 이후 四方에 일이 많고 刺史의 권위가 낮아 州牧을 두어 重臣을 임명할 것을 건의하여 靈帝가 이를 따랐다. 州牧은 州의 軍政大權을 장악하여 郡守보다 지위가 높았다.
후에 구력거가 죽고주 019아들 누반(樓班)이 나이가 어렸던주 020반면에 조카인 답돈(蹋頓)에게 무예와 지략이 있었기 때문에 [답돈이] 대신 대인이 되어 3왕의 무리들[三王部]주 021을 모두 거느리니주 022무리들은 모두 그의 명령[敎令]주 023을 따랐다. 원소(袁紹)와 공손찬(公孫瓚) 주 024이 계속 전투를 벌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자, 주 025 답돈은 사신을 원소에게 보내 화친(和親)을 구하였고, [화친이 성사되자]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공격하였다.주 026 원소는 황제의 명령[制]을 위조하여 답돈, [난루], 초왕, 한로왕에게 인수(印綬)를 하사하고, 모두 선우(單于)로 삼았다.주 027[배송지주]
- 각주 001)
- 각주 002)
- 각주 003)
- 각주 004)
- 각주 005)
- 각주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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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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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4)
靈帝(157~189;재위 167~189):이름은 劉宏이며, 章帝의 玄孫이다.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解瀆亭侯에 봉해졌다. 永康元年(167)에 桓帝 사후 竇太后와 그녀의 아버지 竇武가 皇帝로 옹립하였다. 재위기간 중 竇武와 陳蕃이 宦官을 주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宦官들은 계속 정치에 간여하였다. 환관들은 黨禁을 다시 일으켜서 李膺·杜密 등 100여 인을 체포하여 죽였고 豪傑과 儒學者, 덕행 있는 사람을 黨人으로 몰아 600~700여 인을 죽이거나 유배 보내거나 禁錮에 처하였다. 西邸에서 공개적으로 官爵을 팔았으며 天下의 田畝에 100錢의 세금을 매겨 宮室을 세웠다. 中平元年(184)에 黃巾賊이 봉기하여 後漢이 사실상 붕괴하였다.
- 각주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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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6)
劉虞(?~193):後漢시대 東海郡 郯縣 사람이며 字는 伯安이다. 孝廉에 察擧되어 幽州刺史·甘陵相·宗正을 지냈다. 靈帝때 前中山相 張純과 前泰山太守 張擧 등이 烏桓과 연합하여 起兵하자 幽州牧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진압하여 太尉로 승진되고 容丘侯에 봉해졌다. 董卓이 정권을 잡은 후 大司馬에 임명되었고 襄賁侯에 봉해졌다. 袁紹가 董卓을 토벌하려 할 때 그를 맹주로 삼으려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靑州·冀州 등지를 수년 동안 경영하여 농경을 권유하고 독려하여 민생이 비교적 안정되었다. 후에 公孫瓚과 사이가 멀어져 그를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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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017)
幽州牧: 幽州의 지방장관을 뜻한다. 漢武帝 때 전국을 13州部로 나누고 刺史를 두어 諸郡을 감찰하게 하였다. 秩은 六百石이었다. 成帝 綏和元年(전8) 刺史를 州牧으로 改稱하고 秩은 二千石으로 높아져 지위는 九卿 다음이었다. 哀帝 建平 2년(전5) 원래의 명칭과 秩로 바뀌었다. 元壽 2년(전1) 다시 州牧으로 바꾸었다. 後漢時代에는 刺史를 설치하고 秩은 六百石이었으며, 監察을 담당하였다. 후에 점차로 州가 행정구역의 기능을 하면서 일급 지방행정장관이 되었다. 靈帝 中平 5년(188) 太常 劉焉이 黃巾賊의 난 이후 四方에 일이 많고 刺史의 권위가 낮아 州牧을 두어 重臣을 임명할 것을 건의하여 靈帝가 이를 따랐다. 州牧은 州의 軍政大權을 장악하여 郡守보다 지위가 높았다.
- 각주 018)
- 각주 019)
- 각주 020)
- 각주 021)
- 각주 022)
- 각주 023)
- 각주 024)
- 각주 025)
- 각주 026)
- 각주 027)
색인어
- 이름
- 구력거(丘力居), 난루(難樓), 소복연(蘇僕延), 초왕(峭王), 오연(烏延), 한로왕(汗魯王), 장순(張純), 구력거,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 영제(靈帝), 유우(劉虞), 유우, 장순, 구력거, 누반(樓班), 답돈(蹋頓), 답돈, 원소(袁紹), 공손찬(公孫瓚), 답돈, 원소, 원소, 공손찬, 원소, 답돈, 난루, 초왕, 한로왕, 배송지
- 지명
- [후]한, 요서, 상곡, 요동속국(遼東屬國), 우북평, 중산, 청[주](靑州), 서[주](徐州), 유[주](幽州), 기[주](冀州), 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