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조가 미시(微時)에 함흥에서 친상을 당하였으나 좋은 지관을 만나지 못하여 아직 산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종아이가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다가 길에 앉아 쉬던 스님과 상좌를 만났는데, 그 중 스님이 “저기 아래 것은 장상(將相)이 날 자리에 불과하나 위의 것은 당세에 왕후(王侯)가 날 자리라.”라고 하는 말을 엿들었다.
종아이가 빨리 달려가 태조에게 고하니, 태조는 즉시 말을 달려 10여 리를 쫓아갔다. 이윽고 두 사람을 만난 태조는 말에서 내려 공손히 절하고 자신의 집으로 가기를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사양하던 두 사람도 태조의 거듭된 간청에는 어쩔 수 없어 마침내 동행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모신 태조는 정성을 다하여 융숭히 대접한 뒤 친상을 당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산지를 보아 줄 것을 청원하였다.
스님은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이 무슨 산술(山術)을 알겠습니까?” 하고 거절하였으나, 상좌가 “남의 성의를 차마 저버릴 수 없으니, 저번 그 자리를 가리켜 주면 좋겠습니다.”고 권유하여, 결국 스님도 왕후의 혈을 일러 주고 가 버렸다.
그곳이 환조(桓祖)의 능침인 정화릉 터였으며, 스님은 나옹(懶翁), 상좌는 무학(無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