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0.10.03 日本書紀(720)
by Silla on 2022-08-22
ᐥ신공황후가 和珥津에서 출발하여 신라에 이르자 신라왕 波沙寐錦은 흰 끈을 목에 걸어 항복하고 토지의 도면과 백성의 호적을 봉인하여 항복하였다. 신공황후가 돌아갈 때는 微叱己知波珍干岐를 볼모로 하여 금, 은, 비단 등을 배 80척에 싣고 관군을 따르게 했다.ᐥ

겨울 10월 기해삭 3일에 和珥津에서 출발했다. 이 때 바람의 신은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의 신은 파도를 일으켰으며 바다 속의 큰 고기가 모두 떠올라 배를 도왔다. 곧 큰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배는 물결을 따라 갔으므로 노 젓는 데 힘들이지 않고 바로 신라에 도착하였다. 이 때 배를 실은 물결이 멀리 나라 가운데까지 미쳤으니 곧 하늘과 땅의 신들이 모두 도왔음을 알 수 있다. 신라왕은 이에 두려워 떨며 몸 둘 바를 모른 채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신라의 건국 이래 일찍이 바닷물이 나라에 넘친 일을 듣지 못했다. 만약 천운이 다했다면 나라가 바다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가 바다에 가득차고 깃발들이 햇빛에 빛났다. 북과 나팔소리가 나니 산천이 모두 떨었다. 신라왕이 멀리서 바라보고 심상치 않은 군대가 장차 자기 나라를 멸망시킬 것으로 여겨 두려워하며 싸울 뜻을 잃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내가 들으니 동쪽에 신국이 있는데 일본이라고 하며 성스러운 왕이 있어 천황이라고 한다. 반드시 그 나라의 신병일 것이니 어찌 병사를 일으켜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며 곧 흰 기를 들고 스스로 항복하여 왔다. 흰 끈을 목에 걸어 항복하고 토지의 도면과 백성의 호적을 봉인하여 왕의 배 앞에 와서 항복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지금 이후로는 하늘과 땅과 같이 길이 엎드려 말을 기르고 마구를 관리하는 부서가 되겠습니다. 배의 키가 마를 틈 없이 봄가을로 말의 털을 씻는 빗과 말채찍을 바치겠습니다. 또한 바다가 먼 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해마다 남녀의 조를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거듭 맹세하여 “동쪽의 해가 다시 서쪽에서 떠오르지 않는다면, 또한 아리나예 강이 오히려 거꾸로 흐르고, 냇물의 돌이 올라가 별이 되는 일이 없는 한, 봄가을의 조공을 거르고 빗과 채찍을 바치지 않거나 게을리 하면 하늘과 땅의 신이 함께 토벌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신라왕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황후는 “처음에 금은의 나라를 주겠다고 한 신의 가르침을 받들고 3군에 호령하여 ‘스스로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 이미 재물이 많은 나라를 얻었고 또 사람들이 스스로 항복했으니 죽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였다. 이에 항복의 결박을 풀고 하찮은 일을 맡기는 부서로 삼았다. 드디어 그 나라 안에 들어가 보물 창고를 봉하고 토지의 도적과 백성의 호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황후가 가지고 있던 창을 신라왕의 문에 세워 후세의 증거로 삼았다. 그래서 그 창은 지금도 신라왕의 문에 서 있다. 이에 신라왕 파사매금(波沙寐錦)은 미질기지파진간기(微叱己知波珍干岐)를 볼모로 하여 금, 은, 비단 등을 배 80척에 싣고 관군을 따르게 했다. 이리하여 신라왕은 항상 80척의 세금을 일본국에 바쳤는데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이 때 고려와 백제 두 나라 국왕이 신라가 토지의 도면과 백성의 호적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사력을 살피도록 하였다. 그 결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길이 서쪽 번국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내관가둔창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이다. 황후가 신라로부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