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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신라를 치고자 함

62년에 신라가 조공해오지 않았다. 그 해에 습진언을 파견하여 신라를 치도록 하였다.
[『백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임오년(壬午年)주 001
번역주 001)
신공황후 섭정 62년의 수정기년인 38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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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신라가 귀국을 받들지 않으므로 귀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사치히코)주 002
번역주 002)
襲津彦을 가리킨다. 신공황후 섭정 5년 춘3월 葛城襲津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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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내어 이를 치도록 하였다. 신라인은미녀 두 명을 단장시켜서 나루에서 사지비궤을 맞이하여 유혹하였다. 사지비궤는 그 미녀를 받고는 도리어 가라국주 003
번역주 003)
大加耶를 가리키며 현재 경북 고령지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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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쳤다. 가라국의 왕 기본한기(己本旱岐)주 004
번역주 004)
己本은 왕의 이름이며 旱岐는 대가야의 왕호 이전의 수장칭호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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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들 백구지(百久至), 아수지(阿首至), 국사리(國沙利), 이라마주(伊羅麻酒), 이문지(爾汶至)주 005
번역주 005)
여기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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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은 그 인민을 데리고 백제로 도망해 왔다. 백제는 이들을 두터이 대우하였다. 가라국 왕의 누이인 기전지(旣殿至)주 006
번역주 006)
계체천황 7년(513) 동11월조에 보이는 伴破의 旣殿奚, 흠명천황 2년(541) 하4월조의 古殿奚와 음은 비슷하지만 본조의 旣殿至는 여자이기 때문에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낮다. 단 대가야의 왕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至’자를 이용하여 이름을 짓거나 혹은 존칭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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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대왜(大倭)주 007
번역주 007)
『백제기』의 大倭는 왜국을 가리키며, 다른 『日本書紀』 기사에 보이는 大倭는 大和國(현재 奈良 縣 지역)을 가리킨다. 『百濟新撰』에도 大倭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백제기』와 『백제신찬』에 원래부터 大倭라고 표기되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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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서 ‘천황주 008
번역주 008)
『백제기』가 편찬되는 과정이나 『日本書紀』에 인용되는 과정에서 윤색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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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비궤을 보내어 신라를 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지비궤는 신라의 미녀를 받고 신라를 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멸망시켜 형제, 인민 모두가 떠도는 신세가 되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와서 아룁니다.’라고 말하였다. 천황은 매우 노하여 목라근자를 보내 병사를 이끌고 가서 가라에 모여 그 나라의 사직을 복구시키도록 하였다.” 어떤 책(一)주 009
번역주 009)
『백제기』의 내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인용문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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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사지비궤는 천황이 노하였음을 알고 감히 공공연히 귀국할 수 없어 몰래 잠입하였다. 그 누이동생주 010
번역주 010)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日本書紀』에 의하면 襲津彦의 딸인 磐之媛은 仁德天皇의 황후가 되어 履中, 反正, 允恭 세 천황을 낳았다. 여기서 ‘妹’라고 하였기 때문에 磐之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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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황궁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궤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천황의 노여움이 풀렸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누이동생은 꿈을 핑계 삼아 ‘어젯밤 꿈에서 사지비궤를 보았습니다.’라고 아뢰자 천황은 ‘어떻게 감히 비궤가 돌아올 수 있는가.’라며 몹시 분노하였다. 누이동생이 이말을 전하자 비궤는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고 석굴에 들어가 죽었다.”라고 하였다.].

  • 번역주 001)
    신공황후 섭정 62년의 수정기년인 382년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襲津彦을 가리킨다. 신공황후 섭정 5년 춘3월 葛城襲津彥 참조.바로가기
  • 번역주 003)
    大加耶를 가리키며 현재 경북 고령지역에 있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己本은 왕의 이름이며 旱岐는 대가야의 왕호 이전의 수장칭호로 이해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5)
    여기에만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계체천황 7년(513) 동11월조에 보이는 伴破의 旣殿奚, 흠명천황 2년(541) 하4월조의 古殿奚와 음은 비슷하지만 본조의 旣殿至는 여자이기 때문에 동일인물일 가능성은 낮다. 단 대가야의 왕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至’자를 이용하여 이름을 짓거나 혹은 존칭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음이 주목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백제기』의 大倭는 왜국을 가리키며, 다른 『日本書紀』 기사에 보이는 大倭는 大和國(현재 奈良 縣 지역)을 가리킨다. 『百濟新撰』에도 大倭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백제기』와 『백제신찬』에 원래부터 大倭라고 표기되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백제기』가 편찬되는 과정이나 『日本書紀』에 인용되는 과정에서 윤색된 표현이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백제기』의 내용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인용문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바로가기
  • 번역주 010)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日本書紀』에 의하면 襲津彦의 딸인 磐之媛은 仁德天皇의 황후가 되어 履中, 反正, 允恭 세 천황을 낳았다. 여기서 ‘妹’라고 하였기 때문에 磐之媛은 아니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습진언, 사지비궤, 사지비궤, 사지비궤, 기본한기, 백구지, 아수지, 국사리, 이라마주, 이문지, 기전지, 사지비궤, 사지비궤, 목라근자, 사지비궤, 비궤, 사지비궤, 비궤, 비궤
서명
백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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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치고자 함 자료번호 : ns.k_0017_019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