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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사마숙녜(斯摩宿禰)를 탁순국에 보냄

46년주 001
번역주 001)
『日本書紀』 기년으로 246년에 해당되지만, 백제 왕력 기사에 기초해 2干支 내려 연대를 수정하면 366년으로 근초고왕 21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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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3월 을해삭(1일)에 사마숙녜(斯摩宿禰;시마노스쿠네)주 002
번역주 002)
종래 일본학계의 일각에서는 斯摩를 일본 和歌山縣 橋本市 隅田八幡宮에 소장되어 있는 人物畵像鏡의 명문에 보이는 ‘斯麻’와 동일인물로 비정하기도 했으나, 同 鏡銘의 冒頭에 나와 있는 癸未年은 서기 443년 혹은 503년으로 추정되어 神功紀의 수정연대 366년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斯摩를 출신지명으로 이해하고 宿禰를 姓(가바네)이 아닌 氏(우지) 즉 氏族名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후문에는 志摩宿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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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탁순국(卓淳國)주 003
번역주 003)
가야제국의 하나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탁순국이 보이지 않는다. 『日本書紀』에는 卓淳國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고 대외관계나 멸망 등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만 보인다. 이 신공황후 섭정 46년 춘3월조에서 백제와 왜의 통교를 중개한 것으로 기술되면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탁순국은 290여 년간 『日本書紀』에 등장하지 않다가 계체, 흠명기에 남부가야 3국의 멸망 기사에서 다시 보인다. 卓淳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창원, 칠원, 대구, 의령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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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파견하였다[사마숙녜는 어떤 성(姓)주 004
번역주 004)
姓은 고대 일본에서 氏族의 등급을 표시한 칭호이지만, 본조에서는 姓이 氏(우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일본의 氏는 정치적·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왕 혹은 천황이 하사하는 혈연 또는 擬制的 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각각의 씨에는 氏上이 있어서 씨집단의 재산 및 구성원을 관리하고 氏神에 대한 재산을 담당한다. 각 씨족이 어느 계통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근거는 각 씨족의 선조전승을 기록한 家記類였다. 한편 姓에는 臣, 君, 連, 直, 造, 史, 首 등이 있었는데 각각의 씨에 따라 다르게 사여되었다. 황실 계통의 皇別씨족에게는 臣·君, 天神 계통인 神別씨족에게는 連, 도래계 씨족의 경우에는 吉士·史의 姓이 사여되었다. 천무천황 13년(684)에는 8色姓을 제정하여 眞人, 朝臣, 宿禰, 忌寸, 道師, 臣, 連, 稻置 8종류의 姓으로 정리, 통합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 사여된 것은 忌寸까지의 상위 4성에 그쳤고 그 이외에는 舊姓이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러한 고대 일본의 氏姓제도는 6세기 전반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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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때 탁순왕(卓淳王) 말금한기(末錦旱岐)주 005
번역주 005)
末錦을 신라의 寐錦(마립간)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서는 인명처럼 쓰고 있다. 旱岐는 干支와 같은 것으로 국의 수장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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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숙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갑자년(甲子年)주 006
번역주 006)
신공황후 섭정 46년이 丙寅年이므로 甲子年은 신공황후 섭정 44년이 된다. 『日本書紀』 기년으로는 244년이지만, 백제 왕력 기사를 토대로 2간지를 내리면 364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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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주 007
번역주 007)
‘中’은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7월에’라는 의미이다. 이는 『中原高句麗碑』, 『丹陽赤城碑』 등 한국 금석문에도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 일본 埼玉縣 稻荷山古墳 출토의 철검에도 「辛亥年七月中」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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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백제인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주 008
번역주 008)
久氐, 彌州流 두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久氐는 『日本書紀』 신공황후 섭정 46년부터 52년까지 일관된 활동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당시 백제와 왜의 통교과정에서 왜 측의 千熊長彦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久氐의 ‘久’는 『日本書紀』에서 久爾辛, 久禮波, 久禮志, 久遲布禮, 久禮斯己母, 久禮牟羅城, 久麻那利, 久嵯旱岐, 久貴 등과 같이 모두 한반도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彌州流의 彌도 『日本書紀』에서 枕彌多禮, 布彌支, 彌麻沙, 印支彌, 彌至己知奈末 등과 같이 그 용례가 한반도계 인명과 지명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편 莫古는 莫古解를 가리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莫古解는 근초고왕 24년(369)에 태자 近仇首가 고구려와 싸울 당시 헌책한 인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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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제왕은 동방(東方)에 일본이라는 귀국(貴國)주 009
번역주 009)
倭를 가리킨다. 『백제기』에서 왜를 貴國이라고 적은 것(응신 8년 춘3월조)에 주목하여 귀국을 2인칭적 호칭으로 해석하거나 貴國을 『日本書紀』 편찬자가 윤색한 말로 보기도 한다. 貴國은 상대국을 부르는 존칭이 아니라 비천한 나라에 대한 존귀한 나라라는 의미, 즉 蕃國에 대한 貴國의 의미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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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있다는 말을 듣고 신들을 보내 귀국에 조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찾다가 이 땅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신들에게 길을 가르쳐 통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 왕은 반드시 군왕(君王)에게 깊이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때 왕이 구저 등에게 ‘본디 동쪽에 귀국이 있다는 것을 들은 바 있지만, 아직 왕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바닷길이 멀고 파도가 거칠어서 큰 배를 타고서야 겨우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길이 있다고 해도 어찌 능히 도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에 구저 등이 ‘그러면 지금 당장은 건너갈 수 없겠습니다. 다시 돌아가 선박을 준비한 다음에 왕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만약 귀국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우리나라에 알려주십시오.’라고 당부하고 이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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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書紀』 기년으로 246년에 해당되지만, 백제 왕력 기사에 기초해 2干支 내려 연대를 수정하면 366년으로 근초고왕 21년에 해당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2)
    종래 일본학계의 일각에서는 斯摩를 일본 和歌山縣 橋本市 隅田八幡宮에 소장되어 있는 人物畵像鏡의 명문에 보이는 ‘斯麻’와 동일인물로 비정하기도 했으나, 同 鏡銘의 冒頭에 나와 있는 癸未年은 서기 443년 혹은 503년으로 추정되어 神功紀의 수정연대 366년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에 斯摩를 출신지명으로 이해하고 宿禰를 姓(가바네)이 아닌 氏(우지) 즉 氏族名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후문에는 志摩宿禰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3)
    가야제국의 하나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탁순국이 보이지 않는다. 『日本書紀』에는 卓淳國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은 보이지 않고 대외관계나 멸망 등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만 보인다. 이 신공황후 섭정 46년 춘3월조에서 백제와 왜의 통교를 중개한 것으로 기술되면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탁순국은 290여 년간 『日本書紀』에 등장하지 않다가 계체, 흠명기에 남부가야 3국의 멸망 기사에서 다시 보인다. 卓淳國의 위치에 대해서는 창원, 칠원, 대구, 의령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바로가기
  • 번역주 004)
    姓은 고대 일본에서 氏族의 등급을 표시한 칭호이지만, 본조에서는 姓이 氏(우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 일본의 氏는 정치적·사회적 지위에 따라 대왕 혹은 천황이 하사하는 혈연 또는 擬制的 혈연집단으로서의 동족집단에 대한 칭호이다. 각각의 씨에는 氏上이 있어서 씨집단의 재산 및 구성원을 관리하고 氏神에 대한 재산을 담당한다. 각 씨족이 어느 계통에 속하는가를 결정하는 근거는 각 씨족의 선조전승을 기록한 家記類였다. 한편 姓에는 臣, 君, 連, 直, 造, 史, 首 등이 있었는데 각각의 씨에 따라 다르게 사여되었다. 황실 계통의 皇別씨족에게는 臣·君, 天神 계통인 神別씨족에게는 連, 도래계 씨족의 경우에는 吉士·史의 姓이 사여되었다. 천무천황 13년(684)에는 8色姓을 제정하여 眞人, 朝臣, 宿禰, 忌寸, 道師, 臣, 連, 稻置 8종류의 姓으로 정리, 통합하고자 하였으나 실제로 사여된 것은 忌寸까지의 상위 4성에 그쳤고 그 이외에는 舊姓이 그대로 존속되었다. 이러한 고대 일본의 氏姓제도는 6세기 전반에 성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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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末錦을 신라의 寐錦(마립간)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서는 인명처럼 쓰고 있다. 旱岐는 干支와 같은 것으로 국의 수장을 가리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6)
    신공황후 섭정 46년이 丙寅年이므로 甲子年은 신공황후 섭정 44년이 된다. 『日本書紀』 기년으로는 244년이지만, 백제 왕력 기사를 토대로 2간지를 내리면 364년이 된다.바로가기
  • 번역주 007)
    ‘中’은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7월에’라는 의미이다. 이는 『中原高句麗碑』, 『丹陽赤城碑』 등 한국 금석문에도 자주 사용된 표현이다. 일본 埼玉縣 稻荷山古墳 출토의 철검에도 「辛亥年七月中」이라는 문구가 보인다.바로가기
  • 번역주 008)
    久氐, 彌州流 두 인물에 대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久氐는 『日本書紀』 신공황후 섭정 46년부터 52년까지 일관된 활동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당시 백제와 왜의 통교과정에서 왜 측의 千熊長彦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久氐의 ‘久’는 『日本書紀』에서 久爾辛, 久禮波, 久禮志, 久遲布禮, 久禮斯己母, 久禮牟羅城, 久麻那利, 久嵯旱岐, 久貴 등과 같이 모두 한반도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彌州流의 彌도 『日本書紀』에서 枕彌多禮, 布彌支, 彌麻沙, 印支彌, 彌至己知奈末 등과 같이 그 용례가 한반도계 인명과 지명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편 莫古는 莫古解를 가리킨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莫古解는 근초고왕 24년(369)에 태자 近仇首가 고구려와 싸울 당시 헌책한 인물로 나온다.바로가기
  • 번역주 009)
    倭를 가리킨다. 『백제기』에서 왜를 貴國이라고 적은 것(응신 8년 춘3월조)에 주목하여 귀국을 2인칭적 호칭으로 해석하거나 貴國을 『日本書紀』 편찬자가 윤색한 말로 보기도 한다. 貴國은 상대국을 부르는 존칭이 아니라 비천한 나라에 대한 존귀한 나라라는 의미, 즉 蕃國에 대한 貴國의 의미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사마숙녜, 사마숙녜, 말금한기, 사마숙녜, 구저, 미주류, 막고, 구저, 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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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숙녜(斯摩宿禰)를 탁순국에 보냄 자료번호 : ns.k_0017_0110_0010_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