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왕의 왕위계승은 찬(讚,贊)→진(珍,彌)↓제(濟)↓흥(興)→무(武)로 이어졌는데 찬(讚)→진(珍)과 흥(興)→무(武)는 형제관계이고 진(珍,彌)↓제(濟)↓흥(興)은 부자관계다.
왜는 438년에 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요구했으나 송(劉宋)은 451년에 백제를 빼고 가라를 넣어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만 인정한다. 왜는 다시 478년에 송(劉宋)이 인정한 것에 백제를 넣어 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요구했으나 송(劉宋)은 역시 백제를 뺀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만 인정한다. 제(南齊)는 이것을 그대로 이어 479년에 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에 대한 것을 인정한다.
이렇게 백제만 제외된 이유는 왜(倭)가 요청한 나라 중에서 백제만 유일하게 남조와 외교관계를 터놓은 사실과 관련이 있다.
백제는 이미 372년에 송(劉宋)의 전신인 진(東晉)에 조공을 했다고 진서(648)에 나와 있으며 429년부터는 송(劉宋)에도 조공을 한 것으로 송서(488)에 나와 있다. 반면 신라는 제번공직도(526-539)에 ‘신라는 스스로 사신을 보낼 수 없어 521년 백제 사신을 따라와 처음으로 조공하였으며 말도 백제인이 말한 다음에 통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남조가 왜왕에게 작위를 내릴 당시에는 남조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왜왕이 남조로부터 받은 벼슬이 외교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해서 주어진 것일 뿐, 반드시 실질적인 지배관계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짐작을 하게 한다. 다만 백제를 제외한 나머지 삼한 국가들에 비해 외교력은 왜(倭)가 우세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서기(720)가 편찬되기 수 백 년 전부터 이미 왜(倭)는 삼한 국가들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주장했었다는 사실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