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지역의 고대는 역사 기록에 거의 언급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는데, 혹시 영산 지역의 고고학적 양상을 분석해 보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영산 지역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무덤에 여럿을 묻었고 때로는 하나의 널방에 여럿을 묻기도 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것으로 강력한 통치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라나 신라에서도 하나의 무덤에 여러 사람을 묻기도 했는데, 이는 순장이다. 영산 지역과는 정반대로 극도의 통치 권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복 활동은 강력한 통치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2) 무기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적게 출토되고 있다.
무기는 사람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다.
무기가 있어야 내부적으로는 계급이 분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정복 활동을 할 수 있다.
고대의 역사 기록은 대부분 정복 활동에 관한 것이다.
영산 지역의 거의 유일한 역사 기록으로 보여지는 4읍도 왜의 삼한 정벌 기록에 나타난다.
(3) 나주 영동리에서 출토된 인골을 분석해 보면 동일한 모계 유전자가 여러 무덤에서 나온다.
이는 모계 사회를 의미한다.
나주 정촌고분의 돌방에서는 시차를 달리하는 2구의 인골이 나왔는데 모두 40대 여성으로 그 중 한 사람은 금동 신발의 주인이었다. 이것 역시 고대 이 지역이 모계 사회였음을 암시한다.
정복 활동이 활발해지면 남성의 역할이 커져 모계 사회가 유지되기 힘들다.
(4) 철기의 도입이 늦었다.
(5) 성곽이 출토되지 않는다. |